김윤희 수필가·前 진천군의원

 

[김윤희 수필가·前 진천군의원] 불덩이 하나 불끈 솟았습니다/ 己亥年 새날을 밝히는 빛/ 하늘과 흙의 에너지를 품은/ 새 힘, 찬란한 희망입니다. // 새해에는 조금만 더/ 후덕하고 다순 마음으로/ 나눔을 실천하게 하소서/ 세상 보는 눈 밝게 하시어/ 외진 이웃 돌아보게 하소서// 새해에는 조금만 더/ 마음의 빗장 열고 내어주며/ 배려의 맘 절로 들게 하시어/ 소소한 기쁨을 알게 하소서// 새해에는 조금만 더/ 평범함을 귀히 보게 하소서/ 겨울을 이기는 건 봄의 숨결,/ 봄이 흙속의 미물을 일구는/ 그 진리 잊지 말게 하소서//

기해년 새날이 밝으면서 연신 돼지들이 카톡, 카톡 들어온다. 60년 만에 맞는 황금돼지의 해라고 온 나라가 떠들썩하다. 누런 복돼지가 헤벌쭉 웃으며 들어온다. 덩달아 웃음이 터진다. 엄마돼지 아기돼지 올망졸망 살을 맞대고 있는 모습이 정겹다. '건강해야 돼지' '사랑해야 돼지' '행복해야 돼지'라며 셋이 어깨동무를 하고 온다. 맞춤법이 틀려도 애교가 넘친다. 선물을 한 아름 입에 물고 오는 녀석도 있다.

예로부터 돼지는 재물과 행운을 가져다주는 복덩이로 여겨오지 않았던가. 번쩍번쩍 빛나는 금돼지와 함께 쏟아져 들어오는 덕담이 기분을 좋게 한다. 왠지 좋은 일이 많이 있을 것만 같아 설렌다. 아무래도 올해에는 좋은 눈으로 더 많이 칭찬하고 내게 온 덕담, 그 이상을 나누어주며 살라는 건가보다. 돼지는 수천 년 전부터 우리 조상들과 함께해온 가축이다. 생긴 것부터 투박하고 촌스런 것이 우리네 정서와 딱 맞는다. 그래서 정이 더 간다.

어릴 적 우리 집에도 돼지를 키웠다. 앞마당 한 귀퉁이에 돼지우리를 만들어 놓고 한솥밥을 먹은 가축, 아니 가족이었다. 먹다 남은 밥, 국은 물론이고, 쌀뜨물까지도 살뜰히 챙겨 주며 길렀으니 한 식구나 다름없었다. 새끼도 여럿을 순풍순풍 낳아주니 금전적으로도 가계에 큰 도움을 주었다. 동네 대부분의 집에서 적어도 한두 마리씩은 아무렇지도 않게 끼고 살았던 것으로 기억된다. 냄새 난다고 눈살 찌푸리지 않고 서로 교감을 이루며 생활했다. 더러는 팔려 나가고 더러는 동네 큰일 있는 집에 잡혀 먹히면서도 번듯한 존재감이 있던 가족이었다.

그러던 것이 언제부터인가 일방적으로 사육되는 동물로 전락되었다. 대량 사육공장이 되고 만 것이다. 동네에서는 축사를 용납 못하겠단다. 인근에 축사 들어오는 것을 결사반대한다. 가축으로서 사람과 함께 살던 일이 까마득해져간다. 동네 사람끼리도 이해타산 따지고 사는 세상이 됐다. 재물이 올바로 쓰이지 못하면서 물질만능주의가 가져온 병폐다.

가축과 사람의 교감은 물론 사람끼리의 정도 멀어져 가고 있는 시점에 이런저런 모습의 복돼지를 새해 선물로 받으니 옛날 생각이 절로 난다. 물질적으로는 풍요롭지 않았어도 정이 묻어나던 시절, 퀴퀴한 돼지우리 냄새도 아랑곳하지 않던 그때 그 시절이 그립다. 60년 전, 마음속에 흐르던 그 넉넉하고 사람다운 냄새가 배어나는 한해가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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