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옥자 수필가

[한옥자 수필가] 가장 즐겁게 책을 읽은 적이 언제냐고 묻는다면 단연 변소에서의 신문 쪼가리 독서라고 말하겠다. 신문 한 면을 8등분으로 잘라 철사로 매달아 두고 화장지를 대신하던 시절의 독서였다. 운 좋은 날은 연재소설을 읽고 그다음 벌어질 이야기를 상상하곤 했는데 신문 쪼가리 글은 어느 면이라도 쏙쏙 머릿속에 들어왔으니 이보다 더 즐거운 독서 시간은 없었던 것 같다. 군사독재시대의 신문이란 민심 흐리기 수단이라 엄밀히 말해 이것을 독서라고 말하긴 뭣하지만 그건 훗날에야 알게 되었으니 그렇다고 즐겁게 읽던 기억마저 지울 수는 없는 일이다. 겨울에는 엉덩이가 시렸고 여름에는 메탄가스 냄새가 고약했다. 어느 때는 구더기가 발판까지 올라와 기절초풍하기도 했으나 독서의 기억을 떠올려보면 변소의 독서만큼 행복했던 시절도 드물다.

책에 목말랐던 시대를 살아서인지 지금도 책에 대해 애착이 깊다. 남들이 버린 책을 뒤적여 고르고 우편으로 배달되는 간행물도 고스란히 간직한다. 매달 두어 권 정도의 책을 사는 일도 멈추지 못하고 이따금 도서관에서 대출까지 받아온다. 하지만 읽다 만 책이 태반이다. 이유는 여러 가지이다. 활자가 작은 책은 곧 눈이 아프고, 큰 글씨 책은 수시로 페이지를 넘겨야 하는 불편함이 있다. 흔들리는 버스 안에서는 글씨가 거려 몇 장 읽지 못하며 그 무엇보다 집중력이 떨어져 조용하지 않으면 읽어도 내용 전달이 되질 않는다. 이보다 더 솔직한 이유를 대자면 수시로 울리는 전화기의 알림, 즉 각종 신문 앱과 SNS의 새 소식이 종이 활자를 멀리하게 만드는 주요 원인이다.

말하기보다 듣기를 즐기라는 말을 수없이 들었다. 말은 2년이면 배우지만 침묵을 배우려면 60년이 걸린다고 했다. 경청은 금이고 웅변은 은이라는 말도 귀에 딱지가 앉도록 들었다. 그러나 듣고 볼 자료가 흔해졌지만, 책이 귀했던 70년대만큼이나 꼭 듣고 봐야 할 말과 글도 귀해졌다. 지난해 말일에는 해를 넘겨 말의 잔치가 벌어졌으나 질의답지 못하거나, 묻고도 응답을 듣지 않으려는 질의자 덕분에 빈말 잔치가 되었다. 고성이 오고 가는 상황을 보면서 목소리 큰 사람이 이긴다는 우리말을 큰소리만 탕탕 치면 장땡이냐, 로 바꾸고 싶은 심정이었다.

앞길이 창창한 젊은이는 자칭 공익제보자가 되길 원했지만, 극단적 선택을 암시하는 글을 남겼어야 했다. 아무리 옳은 주장이었다 하더라도 썩은 고기를 즐기는 하이에나의 먹잇감이 되었으니 그도 억울할 일이었다. 결국, 그의 부모와 친구들은 사과와 호소문을 발표하기에 이르렀다. 과정과 의도가 선했으니 결과에 대해 너무 가혹하게 책임을 묻지 말아 달라는 문구가 담긴 친구들의 호소문도 보기가 거슬렸다. 알맹이 없이 떠들썩한 이 두 사건도 전 정권 인사의 구속기한 만료 출소 소식의 은폐 도구는 아니었는지 의심도 들 정도이다. 대체로 역사상 기해년에는 전쟁이라든지 분쟁 등이 종결되는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올해도 꼭 그런 해가 되었으면 좋겠다. 남북 종전 선언이라던가, 비정규직 제로인 나라, 출산율이 증가했다, 자영업자가 살 만하다는 말과 글이라면 무엇을 더 바라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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