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우천 입시학원장

[정우천 입시학원장] 새해가 밝았다. 수많은 인파가 일출명소를 찾아 기원과 다짐을 하며 삶의 새로운 한 계단을 오른다. 태양력과 태음력 중 무엇을 기준으로 하냐에 따라 한 사회의 새해 시작이 다르듯 어쩌면 지난해와 새해라는 구분은 사람들의 환상 속에서만 존재하는 시간의 구획 짓기에 불과하다. 무한히 이어지는 시간에 무슨 끝과 시작이 있겠는가. 인간의 편의를 위한 구별과 나눔이 있을 뿐이다. 그래도 이렇게라도 구획 짓고 나누지 않으면 우리는 쉼 없이 밀려오는 시간의 중압감을 감당하지 못하고 질식할 것이다.

헤로도토스의 ‘같은 강물에 두 번 발을 담글 수 없다.’는 말은 되돌릴 수 없음과 앞으로만 끝없이 흐르는 시간의 속성을 표현한 말일 것이다. 이렇게 시간에는 인위적 나눔에 의해 반복되는 듯한 성격과 한번 지나가면 돌이킬 수 없이 한 방향으로만 흐르는 두 가지 성격이 있다. 매일 아침이 다시 오고 한 달이 반복되고 계절은 순환하여 해가 바뀐다. 그러나 새로 시작한 이해는 이미 지나간 그해가 아니다. 반복되는 듯하지만, 다시 돌아가지 못하는 것이야말로 시간의 숙명이다. 새해가 시작될 때마다 느끼는 기시감은 반복되는 시간의 속성 때문일 것이고, 새해의 시작에 계획과 결심을 하게 하는 것은 한 번 가면 다시는 되돌릴 수 없는 시간의 불가역적인 속성 때문일 것이다.

시간이야말로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주어지니 자신에게 주어진 시간을 효율적으로 쓸 방법을 스스로 계획해야 하고, 계획하기에 가장 적당한 때가 바로 새해가 시작되는 이때이다. 세상의 변화 속도는 점점 빨라지고 삶의 길이는 점점 길어지니, 불필요한 것을 버리고 새로운 것을 습득하는 것은 피할 수 없는 숙제이다. 새해의 시작에 대부분이 하는 일은 그렇게 불필요한 것을 버리고 자신에게 필요한 것을 익히겠다는 의욕으로 설계하는 계획이다.

그런데 늘 문제가 되는 것은 계획하는 나를 실천하는 내가 배신하는 것이다. 진화심리학적 해석은 당장 생존에 필요한 것을 하고자 욕망하는 뇌와 더 나은 미래를 위해 눈앞의 욕망을 억제하도록 진화해온 내 안의 뇌가 충돌하기 때문인데, 어쩌면 완결되지 못하고 진화의 과정에 있는 호모사피엔스의 숙명일 수도 있겠다. 3000여만 명을 조사한 한 연구에 의하면 결심이 깨지는 운명의 날이 1월 12일이라고 한다. 작심삼일은 넘기지만 겨우 10여 일 만에 많은 사람이 계획을 포기하고, 그 고비를 넘겨도 2월 말이면 80% 이상이 년 초의 계획을 포기하고 만다. 우리나라에서도 금연결심으로 줄었던 담배판매량이 3월이 되면 거의 예년 수준으로 돌아온다고 한다.

기회의 시작은 신이 하지만 끝은 자신에게 달렸다는 말이 있다. 결심만으로 바뀌는 삶은 없다. 그 결심이 실천되고 반복되어 습관이 되어야만 삶이 바뀐다. 우리는 기승전결의 클라이맥스가 있는 이야기에 익숙해 있고 극적인 삶을 꿈꾸지만, 현실 속의 대다수의 삶은 그렇지 않다. 그저 밋밋하게 전개되다 어느새 다다른 끝이 있을 뿐이다. 내가 선택하지 않는 한 삶은 절정도 없고 어떠한 반전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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