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정숙 수필가

 

[육정숙 수필가] 미호천 물줄기를 따라 걷다보면 강줄기로 힘차게 물길을 차고 오르는, 청둥오리들의 날갯짓을 본다. 동토의 시간 속에서 우리는 손에 잡히지 않아 확실하지는 않아도 머잖아 봄이 올 거라는 걸 느끼듯이. 차디찬 겨울바람 속에서 물줄기를 하얗게 부셔내며 날아오르는 청둥오리들의 꿈이 서리서리 안겨온다. 미호천 강바람은 속으로 파고드는 바람이 더 차다.

한 폭의 동양화 이듯 자연스레, 겨울이 미련처럼 바람 속에 매달려 아우성을 쳐댄다. 갈대는 숙명처럼 머리를 하얗게 풀어헤치고, 바람에게 자신을 온전히 맡겨 버렸다. 그런 갈대를 소리 없이 바라보던 강물은 시린 가슴을 하늘색으로 받아 더 냉정하도록 차 보인다. 그리곤 도도하리만치 한 번도 뒤 돌아보려 하지 않고 흘러간다.

갈대는 추운겨울 내내 강바람을 맞으며 망부석처럼 서있다. 오랜 시간 마주보며 흐른 세월의 깊이가, 시나브로 스미어, 자신도 모르게 강물을 사랑하게 되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기다리는 일에 익숙하지 않은 강물은 그저 무심히 흐를 뿐, 한번을 돌아 볼 줄 모른다. 갈대는 가까이 하고픈 애달픔에 하얗게 말라가는 손만 그저 앙상하게 흔들고 있다. 어쩌랴! 제 타고 난 대로 살아가는 것이 순리던가! 멈출 줄 모르고 흐르기만 해야 하는 숙명을 갈대는 아는지! 어디로든 흐르기만 하는 강물의 심사는 그저 고요하기만 하다.

정이라는 것이 애잔하여 그래도 인연의 줄기가 닿아, 강줄기 군데군데 모래언덕이 있어 천천히 에둘러 흐른다. 두고 가는 마음 탓이려니 천천히 굽어 돌다가 휘 감아 돌며 보듬듯이 끌어안아 주고는 그대로 흘러가 버린다. 유유히. 온 생을 다하여 갈대도 강물도 내 마음은 이런 것이었다고, 말 한마디 못하고, 그저 속으로만 흐른다. 갈대는 강물 속으로 긴 뿌리를 조금씩 내리고 강물은 억척스레 뻣뻣한 세포를 뚫는다. 그렇게 온 생의 삶들을 현실에서 얻은 굽은 등허리에 얹어 놓고 미련하게 또 봄을 기다리는가. 우리는 그렇게 조금씩 기다리는 일에 익숙해져 간다.

저녁에 지는 해를 바라보며 내일 또 다시 떠오를 태양을 그리듯, 우리는 우리 자신도 모르는 사이 기다리는 일에 익숙해져간다. 살아간다는 일은, 아마도  그렇게 기다림을 키워 가는 일일 것이다. 기다려 줄줄 안다는 것은 그 안에 사랑이 머물고 있기 때문이다, 상대를 이해하고 배려해주는 마음이 사랑의 마음이다. 기해년 새해가 솟아 오른 지, 어느새 1월의 중턱을 올라서고 있다.

늘 모두가 최선을 다하며 살지만 대부분 기대에 미치지 못한다. 하지만  새해! 새 희망을 싣고 흐르는 저 힘찬 강물의 노랫소리를 따라 갈대도 노래한다. 갈대의 노래가 있어, 강은 영원히 흐를 것이고 우리들의 삶의 아름다운 꿈과 사랑을 품고 끝없이 흘러가리라. 기해년의 힘찬 날갯짓을 향해 춥고 냉정하도록 차지만 그 물길을 수없이 차고 오르는 또 하나의 날갯짓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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