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광섭 컬처디자이너·에세이스트

[변광섭 컬처디자이너·에세이스트] 미래는 예측하는 것이 아니라 선택하는 것이다. 생물의 다양성이 살아있는 도시가 진정한 생태도시다. 정치는 시민들의 가슴 밑바닥에서부터 시작된다. 도시는 기억의 집합이다. 서울보다 부유할 수 없지만 서울보다 행복한 도시. 가장 전주스럽게 더욱 사람 곁으로. 전주의 문화영토는 세계다….

낯선 풍경, 낯선 만남은 언제나 설렘 가득하다. 호기심과 기대감 때문에 앙가슴 뛴다. 그래서 여행을 하는 것이고 새로운 것에 도전장을 내미는 것이다. 새해 벽두에 전주시청에 들렀다. 전주의 느낌이 담긴 고풍스럽거나 화려한 장식이 마중 나올 것이라는 나의 생각은 사치였다. 시장 집무실로 발을 내딛는 순간 예쁜 초등학교 교실을 보는 느낌이 삼삼했다.

깔끔한 느티나무 탁자에 예쁜 나무의자, 한지로 연출한 차창에서 스미는 햇살, 전주의 역사와 문화를 담은 사진자료, 다양한 종류의 책과 자료들, 그리고 벽에 촘촘히 적혀있는 전주의 비전을 이야기하는 메시지들…. 김승수 시장과 만남은 이렇게 짧지만 강렬했다.

사람들은 전주를 대표하는 상징물로 한옥마을을 얘기한다. 밤낮없이 지구촌 사람들로 문전성시다. 여기야말로 한국의 문화적 가치를 온 몸으로 느끼는 곳이라는 기대감이 가득하다. 그렇지만 불행하게도 이곳은 짝퉁들의 천국이다. 건물주와 장사꾼의 얄팍한 상술로 우리의 문화가 멍들고 있다. 사람들은 한국 문화의 짝퉁을 보고 즐거워한다. 슬픈 일이다.

김승수 시장은 이런 본질적인 문제를 깊이 있게 들여다보고 있다. 한국의 전주, 세계의 전주, 천년의 전주를 어떻게 변주할 것인가 고민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한옥마을 주변 100만평 규모에 7층 이상의 건물을 지을 수 없도록 조례를 만들었다. 그것도 자신의 선거를 앞두고 말이다. 그 저항과 두려움이 얼마나 컸을까. 전주정신을 살려야 한다는 절박감과 시대적 책무감이 그를 용기 있는 실천으로 이끌었다.

전주공설운동장 일원에 대기업이 복합 쇼핑몰을 지으려 하자 온 몸으로 저항하고 있다. 전주시민들이 십시일반 모금운동을 해서 일군 곳이기 때문이다. 이곳에 시민들의 역사문화와 예술과 진한 땀방울의 가치를 담겠다는 것이다. 전주정신은 곧 한국의 정신이요, 전주의 가치는 곧 세계의 비전이며, 전주의 시민보다 더 우선시되는 것은 없다는 소신 때문이다.

지금 그는 한옥마을 주변의 구도심 100만 평을 지붕없는 미술관으로 가꾸려는 의지로 불타고 있다. 아시아의 문화심장터를 만들겠다는 것이다. 대규모 쇼핑몰을 짓고, 초고층 아파트를 입주시키면 편할 것인데 굳이 문화재생을 선택한 것은 전주정신과 시민들의 꿈을 일구겠다는 일념 때문이다. 공간이 사라지면 역사도 사라지고 사랑도 사라진다는 진리를 아는 것이다.

아시아의 문화심장터는 전주천 상류 승암마을에서부터 서노송동, 오거리, 천변, 다가공원, 서학동, 좁은목 약수터에 이르는 100만 평 일대를 문화예술로 재생하고 가꾸어 시민들의 보금자리, 세계인의 문화놀이터로 가꾸는 것이다. 한옥마을의 포화상태를 해결하고 더 큰 성장동력을 찾고 있다. 응원할 일이고 반드시 값진 결실이 있을 것이다.

다시, 내 고향 청주로 돌아왔다. 청주정신이 깃든 구도심에 초고층 빌딩들이 들어서고 있다. 도시재생인지 도시개발인지 분간할 수 없을 정도로 어수선하다. 미세먼지와 무분별한 경관으로 정신까지 혼미하다. 위정자들은 무엇을 보고 있으며, 무엇을 향하고 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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