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법혜 민족통일불교중앙협의회 의장

 

[김법혜 민족통일불교중앙협의회 의장] 문재인 대통령은 최근 체육계 폭력·성폭력 피해 증언이 잇따르는 것과 관련해 "드러난 일뿐 아니라 개연성이 있는 범위까지 철저히 수사하고, 엄중한 처벌이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연이은 체육계 폭력과 성폭력 증언은 스포츠 강국 대한민국의 화려한 모습 속에 감춰져 온 우리의 부끄러운 모습"이라며 이같이 말하기도 했다. 지극히 당연한 말이다. 하지만 중요한 건 실천이다. 과거처럼 이번에도 빈말에 그친다면 피해 선수들의 무기력감, 배신감만 키우게 될 뿐이라는 걸 명심해야 한다. 정부는 마지막 기회라는 각오로 문제 해결에 나서야 한다.

국가대표 선수가 대통령이 걱정할 지경이 될 때까지 체육계는 무얼 하고 있었는지 통탄스럽다. 주변 인사들이 전혀 몰랐는지, 아니면 동료 선후배의 가해와 피해에 모두 ‘침묵의 동조자’가 됐던 것인지 규명할 필요가 있다. 체육계 성폭력 사건은 빙산의 일각일 뿐이다. 지금껏 검찰 등 권력기관, 문화예술계, 교육기관 등에서 드러난 것만도 우리 사회에 성폭력이 만연해 있음을 방증한다.

상관의 성추행 사실을 드러낸 서지현 검사의 용기가 ‘미투’ 운동에 불을 지핀 지 1년이 지났지만 갈 길은 멀다. 오랜 고통 끝에 용기를 낸 심석희의 외침이 권력형 성폭력 척결로 이어지도록 정부와 사회 전체가 호응해야 한다. 심선수의 폭로 이후 체육계 성폭력 문제가 사회적 이슈로 떠오르면서 ‘나도 당했다’는 여성 선수들의 미투 운동으로 확산되는 조짐을 보이고 있다. 유도선수였던 한 여성이 자신의 코치에게 성폭행 당했다는 주장이 또 터져 나왔다.

고등학생 때부터 숙소 등에서 여러 차례 수년간 성폭행했다는 것이다. 가해자로 지목된 해당 코치는 부인하고 있지만 이 여성 선수는 자신의 실명까지 공개하며 피해사례를 낱낱이 밝혔다. 미성년인 선수들은 진학과 대회 출전 스카우트 등에 절대 권력을 가진 지도자에게 속수무책으로 당했다. 선수생명이 끝날까 두려워 침묵해야 했다. 유사한 일이 벌어져도 조사와 처벌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가해자는 가벼운 징계만 받고 별 일 없었다는 듯 다시 돌아왔다.

이처럼 유명 무명을 가리지 않고 크고 작은 성범죄에 노출돼있지만 체육계의 대책은 있으나마나 한 것이다. 그래서 체육계 내부의 자정능력은 불가능하다는 지적이 거세게 일고 있어 체육계에 대한 불신이 크다. 체육계는 지도자와 선수 간 위계가 엄격하고 출전, 진학, 취업 등 선수의 미래를 지도자가 좌지우지하는 경우가 많다. 학맥, 인맥 등 연줄로 얽혀 있어 성폭력을 당하더라도 알리기 쉽지 않은 곳이다. 이제 더 이상 ‘일등만 하면’, ‘금메달만 따면’ 괜찮은 세상이 아니다. 여성 선수들의 증언과 고백에만 의존해서는 안된다. 화려한 성적에 가려졌던 체육계의 후진성을 근본적으로 개선하고 그야말로 스포츠 선진국으로 가야 한다.

지금까지 솜방망이 처벌, 제 식구 감싸기가 체육계에 만연한 성폭력의 이유임은 자명하다. 대한체육회는 각종 입시비리, 승부조작, 파벌싸움 등 체육계 비리 의혹에도 연루되어 왔다. 대한체육회를 중심으로 한 ‘침묵의 카르텔’을 깨지 않고서는 대통령까지 주문하고 나선 엄정 처벌, 체육계 쇄신은 불가능하다. 그간 체육회를 제대로 관리·감독하지 못한 문체부도 책임을 피할 길이 없다.

때문에 강력한 조사권을 가진 독립기구를 만들어 스포츠계의 썩은 부분을 과감히 도려내야 한다. 정부와 국회는 체육계 성폭력을 전문적·체계적으로 조사할 독립기구를 설치하는 일을 서두르기 바란다. 그리고 여성 운동선수들의 용기있는 증언이 한국 스포츠의 낡은 악습을 뿌리 뽑는 계기로 작용하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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