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향숙 수필가

 

[이향숙 수필가] 선생님의 목소리가 한껏 고양되었다. 장내는 조용해지는 듯싶다가 다시금 웅성거린다. 애국가를 부르는 졸업생들 뒤에서 화음을 넣듯 따라 부른다. 아이들의 학교 행사에 참여 할 적마다 파도치듯 감정이 너울댄다. 작은 아이가 태어나서부터 자라는 모습이 주마등처럼 지나간다. 행복한 일임에도 목이 메인다.

졸업장 수여식이 이어진다. 한 송이 장미를 든 교장선생님이 담임선생님과 교단에 서고 학생들이 순서대로 올라 선생님과 친구, 후배, 학부모를 향해 감사 인사를 한다. 스크린에는 당사자의 앨범사진이 올려져 멀리서도 얼굴을 볼 수 있다. 덤블링을 하거나 친구들의 팔가마를 타기도 하고 춤추거나 노래를 하며 등장하기도 한다. 갓 스물이 된 아이들의 티 없이 맑은 모습이다. 그동안 다이어트를 해서 스크린의 사진과 조합이 이루어지지 않는 우리아이는 운동신경을 뽐내며 제 허리 보다 높은 교단을 단숨에 뛰어 오른다. 연예인처럼 포즈를 취하는 모습에 객석은 웃음바다가 되었다.

아스라이 먼 기억이 떠오른다. 애써 밝은 표정을 짓고 있는 여자아이가 한쪽 귀퉁이에 서 있다. 한치 앞을 볼 수 없을 정도로 세상은 한없이 어둡게 느껴졌다. 도시로 나가 겪어야 하는 일들은 예견조차 할 수 없을 만큼의 두려움이었다. 중학교를 졸업 할 때와는 또 다른 것이었다. 그래도 그때는 방학동안 아르바이트로 학비를 마련하여 어머니의 근심을 조금을 덜어 드릴 수 있었다. 하지만 스무 살은 달랐다. 스스로를 먹여 살려야 했고 이순이 된 홀어머니와 네 살 터울인 동생의 짐도 나누어 들어야 했다. 꿈보다는 얼른 성공해서 어머니를 모셔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조여오고 있었다. 생애 중 가장 두려웠던 순간이 내게는 그날 이었지 싶다.

사전적 의미의 졸업은 규정된 교과나 학업을 마치는 것이다. 다른 의미에서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순간이기도 하다. 아이는 대학에서 본인이 원하는 공부를 할 수 있게 되었다. 세상살이의 선배이기도 한 부모가 대학의 명성을 우선순위로 한 조언보다 하고 싶은 공부를 선택했다. 서운함을 느꼈으나 시간이 지나면서 이해하게 되었다. 모든 것을 내려놓고 오직 아이의 행복만을 생각하기로 했다. 내가 스무 살에 두려움을 느꼈던 것은 아버지의 부재로 헤쳐 나가야 할 길이 녹록치 않음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다행히 우리 부부는 건강하게 작은 아이의 스무 살을 맞이하고 축하 해줄 수 있게 되었다. 힘이 되어주고 언제나 손을 내밀면 닿을 수 있는 거리, 이쯤에서 지켜 볼 요량이다.

어느덧 교장선생님의 음성이 울려 퍼지고 있다. 처음 아이들을 만났을 적에 한 약속은 단 한사람도 낙오자 없이 졸업을 맞이하는 것 이었는데 그 약속이 이루어져 감동스럽단다. 응답하듯 나의 바람이 종알거린다. 수많은 꿈들이 어른이 되었다고 잊혀지지 말고 한 가지라도 꼭 쥐고 있다가 언제고 이루어내길 기도 한다. 축제 같은 졸업식으로 아이들의 표정은 밝았다. 나름 진지하게 미래를 계획하고 도전하는 모든 이에게 박수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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