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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투와 레드 퀸정우천 입시학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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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9.01.23  13:4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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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우천 입시학원장] 해를 넘긴 미투 운동이 연초부터 매스컴을 뒤흔든다. 이미 전년부터 시작된 용기 있는 미투로 몇몇 유력정치인과 연예인은 민망한 모습으로 퇴출당했고, 위선의 탈을 쓰고 파렴치한 짓을 일삼던 문화계의 거목 몇도 대중의 손가락질을 받으며 망신스러운 모습으로 사라졌다. 스스로 어떤 변명이 있을지 모르겠으나 시대가 변했는데도 자신의 시간 속에 갇혀 시대착오적 가치관으로 살아간 대가로 봐야 할 것 같다.

지금은 상상하기도 힘들지만, 축첩과 관기가 당연시되고 사회적으로 거부감없이 받아들여지던 시대도 불과 백여 년이 조금 넘었을 뿐이다. 자연법칙은 시대가 지나도 변함없지만, 인간의 법칙은 시대와 상황에 따라 변화하는 법이니 시대의 변화에 엇박자를 내면 대가를 치를 수밖에 없다. ‘선녀와 나무꾼’이라는 전래동화가 있다. 줄거리는 사냥꾼에 쫓기던 사슴을 마음 착한 나무꾼이 구해주고, 사슴은 목욕하는 선녀의 옷을 숨겨 선녀와 결혼할 방법을 알려준다.

아이가 셋이 될 때까지 선녀의 옷을 돌려주지 말라는 사슴의 말을 어기고 나무꾼은 선녀의 옷을 돌려주어, 선녀는 두 아이와 하늘나라로 돌아가 버린다. 다시 사슴의 도움으로 하늘나라에서 가족과 재회했으나 두고 온 어머니 걱정에 다시 내려온 나무꾼은 이제 다시 선녀에게로 돌아가지 못하고 말았다는 이야기이다. 사슴을 구해준 나무꾼의 착한 마음과 효심에 대한 보답, 선녀와 사랑으로 이룬 단란한 가정 이야기, 그러나 결국은 신분의 차이를 극복하지 못하는 이야기이다.

이 아름답고 안타까운 사랑 이야기를 지금 기준으로 본다면 어떨까. 도망치는 사슴을 도와준 행위는 사냥꾼의 밥그릇에 흠집을 낸 분별없는 오지랖일 수 있으며, 선녀의 목욕 장소에 몰래 찾아가 옷을 감춘 행위는 몰카에 파렴치한 여권 유린은 아닐까? 또한 늙은 어머니에 대한 걱정은 결과적으로 가정과 가족이 해체되는 무책임한 가장의 일탈로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시대의 변화는 동화의 해석도 바꾼다.

‘거울 나라의 앨리스’라는 동화에 열심히 달리지만, 주위가 더 빨리 변해 제자리를 벗어나지 못하는 붉은 여왕이 나온다. 이 동화에서 차용한 개념으로, 스스로는 변화했다고 생각하지만, 주변의 변화 속도를 따라가지 못해 뒤처지는 현상을 ‘레드 퀸(red queen) 이론’이라고 한다. 열려있다 자부하는 남자들도 페미니스트 입장으로 보면 답답한 꼰대에 다름없을 수도 있다. 성 평등에 대한 사회적 요구와 여성의 권리에 대한 주장은 어쩌면 보통 사람들의 생각보다 훨씬 빨리 변하고 있고 그에 더해 극단적 페미니즘을 주장하는 쪽에서는 변화의 요구를 넘어 남성 혐오를 거침없이 쏟아내고 있다.

불과 몇십 년 전만 해도 페미니즘은 힘없는 여성에 대한 연민과 최소한의 보호라는 성격이 있었지만, 최근의 페미니즘은 혐오와 이에 더해 과격한 전투적 자세로 변화했다. 물도 출렁거림 있어야만 중심을 잡는 모습처럼, 어쩌면 과격한 주장과 지나친 공격성이 뒤범벅된 혼돈과 대립은 과도기의 겪어야만 할 과정일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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