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완하(시인 · 한남대 문창과 교수)

인류의 역사란 자연으로부터 소외의 역사라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인간 의식 속에는 인간과 자연, 문명과 자연 사이에 존재하는 괴리감이 깊게 자리하고 있다. 인간이 자연과 총체성을 간직하고 있던 시대로부터 이탈되어 오는 과정이 곧 인류의 역사였다고 할 수 있다. 더욱이 현대인들은 최첨단과학 문명의 발달을 지향함으로써 자연의 대한 손상과 그 토대의 극심한 상실감을 경험하고 있다. 이로 인해 생명 사랑과 자연 사랑의 정신을 상실해 가고 있다. 그 결과로 인간들은 본래의 순정(純正)한 세계를 꿈꾸며 시원적 생명 세계로 되돌아가려는 몸부림을 끊임없이 보여준다. 그것은 바로 인간이 잃어버린 신화시대를 그리워하는 신화적 상상력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신화시대란 자연과 인간이 일체감을 지닌 자연과 인간 사이의 갈등이나 거리감이 대두되기 이전에 총체성을 간직하고 있던 때라 할 수 있다. 그것은 자연과 인간이 보다 건강한 생명의 질서 위에 일체감을 이루었던 세계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제 "인간들과 자연이 통합되어 있던 본래의 상황"을 꿈꾼다 해도 자연과의 괴리감이 너무 크기 때문에 그 회복이 불가능한 상태에 놓여 있다. 이 사실은 단순히 인간이 순수한 자연을 상실했다는 데에 그치지 않고 보다 근원적인 것의 상실로 인한 소외감으로 이어지게 된다. 오늘날 우리는 소외를 인간존재의 보편적 특성으로 이해하려는 입장에 놓여있다. 인간도 자연의 일부분으로 자연과 일체감을 이루었다가 그것으로부터 이탈됨으로써 자신의 본질을 잃고 비본질적인 상태에 놓이게 되었다. 인간과 자연의 문제를 생태주의 관점에서가 아니라, 인간 소외의 문제로 파악해야 하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현대인들이 정체성을 상실해 가는 원인도 이상의 사실과 무관하지 않다고 본다. 정체성을 상실해 가는 현대인들의 의식세계에 근원적 모성으로서의 자연에 대한 소외감은 점차 증대되어 간다. 시인들은 이러한 점을 누구보다 예민하게 느끼고 반응하며 그것을 시로 형상화한다. 또한 시인들이 시를 쓰다는 일 자체가 대단히 생태 환경 친화적인 것이기도 하다. 시인들은 자연으로부터 인간소외를 통해서 현대인들의 정체성 상실의 국면들을 이해하고 분석해낸다.

생태주의 문제와 관련하여 최근에 많은 관심들이 표출되고 있다. 이제 자연을 단순히 물리적 공간으로 대하기보다 인간정신의 근원적인 측면으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 생태계 문제의 심각성을 전재한다고 해도 기존의 관심으로 접근해서는 본질과 핵심에 도달할 수 없다. 다시 말하면 생태 환경의 문제에 대한 각성과 경고란 인간이 노력해 나아갈 문제이기는 하되, 그것으로는 근본적인 문제의 이해가 불가능한 것이기 때문이다. 인간은 자연 환경이라는 대상과의 물질적 관계나 교류 이면에 보다 정신적이고도 근원적인 관계성을 갖고 있다. 그러므로 자연과 인간의 관계를 소외의 입장에서 이해하고, 자연으로부터의 인간 소외를 살펴보아야 한다. 이를 통해서만 현대인들이 정신적으로 얼마나 큰 훼손을 겪고 있는지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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