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기태 건양대 교수

 

[박기태 건양대 교수]  세월 참 빠르다. 엊그제 새로운 각오로 기해년 새 아침을 맞이한 것 같은데 벌써 달력의 첫 장이 이별을 고하려 하니 말이다. 우리는 매년 아쉬움 속에서 한 해를 보내면서, 다가 올 날들에 대한 희망을 노래하며 새해를 시작한다. 하지만 우리들 대부분이 그러하듯 생각만큼 모든 일들이 순조롭게 흘러가지 못하고 엉뚱한 방향으로 비켜나가고 있음에 자신의 존재성만이 덩그렇게 널 부러져 있다는 사실을 느끼게 된다. 그러한 까닭에 우리는 늘 부족함을 깨닫게 되고, 그것과 더불어 나도 그리고 사회도 날로 새로워 질 수가 있다는 각오로 ‘다시’를 외치며 또 다시 새로운 아침을 맞이하는 것 같다.

우리가 ‘다시’를 외치며 각오를 다지는 것은, 각자가 꼭 해야만 하는 끌림이 따로 있기 때문이다. 무엇인가에 끌린다는 사실은 매우 자연스러운 일이며, 자기만족을 추구하기 위한 지극히 정상적인 섭리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소위 ‘생긴 대로 사는 것’이 끌림을 거부하지 않는 것이며 자기다짐이나 각오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생각한다. 지난 일에 대한 아쉬움을 떨쳐버리고 자기 각오에 대한 보상을 받기 위해서 우리가 ‘다시’라고 말을 할 때에는 상황에 대한 이해의 접점을 찾으려고 노력해야 하고, 비난이 아닌 원인 분석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는 우선 “각자가 현재 상황에 얼마나 원인을 제공했는가?”를 알아야 한다.

살아가면서 우리는 많은 사람들과 관계를 맺는다. 그 안에서 때론 기대와 실망을 반복하기도 하고 때론 기뻐하거나 슬퍼하기도 한다. 그러면서 모든 사람이 나와 같은 마음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되는 순간이 온다. 그 관계 속에서 자기 자신이 초라하게 생각될 수도 있으며 자신의 삶이 녹록치 않다고 느껴질 때도 있다. 그럴지라도 자신이 해야 할 책임을 찾고 이러한 사실을 인정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그래야만 ‘다시’를 외칠 수 있는 위로의 기회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 다음 단계는 “현재의 상황을 어떻게 변화시킬 수 있는가? 앞으로 무엇을 할 수 있는가?”에 관하여 앞에서 말한 원인에 대한 해결책을 찾아야 하는 것이다. 본래 원인을 찾는 일은 관계나 일 처리 방면에서 훨씬 지속적이고 효과적인 변화를 불러일으킬 수 있기 때문에 우리에게 ‘다시’라는 희망을 안겨줄 수 있음을 알아야 하겠다. 시인 정용철의 새로운 희망을 노래한시 “다시”가 머리에서 맴돈다.

어제는 지나갔고 / 우리는 지금 여기에서 / 다시 시작한다 /(중략)/ ‘다시’는 원점으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다 / 그곳에서 새롭게 시작하는 것이다 /(중략)/ 우리는 ‘다시’라는 이름으로 / 한 번 더 살아 보기로 한다 / 얼마나 다행인가? / 얼마나 고마운가? / 무엇보다 다시 사랑할 수 있다니 / 얼마나 멋진 일인가?

우리는 결코 쉽지 않은 시점에 종종 서있을 수 있다. 그러나 여기저기에서 엄습하는 자포자기와 실망의 소리를 들으면서도 ‘다시’를 외치는 한 우리에게는 희망이 있다는 사실을 상기하자. 조금 모자라면 어떻고 조금 늦으면 어떠하랴! ‘다시’를 외칠 수 있다면, ‘다시’를 통해 열어가는 조그마한 틈새가 진정 우리를 숨 쉬게 하는 희망인 것을….

요즘 들어 지난 시간을 되돌아 볼 때가 종종 있다. 그러면서 깨닫는다. 결국 인생의 막바지 벼랑 끝까지 때때로 나를 내몰았던 고통들이야말로 나를 다시금 살게끔 만든 단금질이었다는 것을. 그래서 짊어진 삶의 무게 속에서도 좀 더 깊이 있는 자문자답을 해야만 했었고, 그 해답을 찾기 위해 밤새워 고민도 했기에 지금의 내가 될 수 있었던 것 같다. ‘다시’를 외쳐야 했던 것은 나의 숙명이었을지도 모른다. 그 말속에는 반복의 의미도 있겠지만 그것보다 훨씬 더 중요한 것은 새로움을 열어 가고자 염원하는 기대가 담겨 있기 때문이다. 그런고로 우리 모두 ‘다시’가 희망의 기회로 회자될 때까지 큰 소리로 외쳐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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