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윤희 수필가·전 진천군의원

 

[김윤희 수필가·전 진천군의원] 2월의 시작이다. 제일 먼저 설 명절 연휴가 눈에 들어온다. 올해는 까치설과 입춘이 맞물렸다. 입춘은 정월 첫 번째 드는 절기로, 새해 첫 출발을 상징한다. 추위가 채 물러가기 전이지만 봄의 기운이 기지개를 켜며 일어서고 있음을 몸이 느낀다. 우리 조상들은 예로부터 설을 쇠고 정월대보름을 기점으로 한 해 농사를 시작해 왔다. 입춘방을 펄럭이며 본격적으로 한해가 새롭게 열림을 의미한다. 지금은 사라져가는 풍속의 하나가 돼가고 있지만 한 때는 설 명절과 함께 커다란 의미를 지녔던 흔적을 곳곳에서 볼 수가 있다.

설날에 세배함은 인정 후한 풍속이라/ 새 의복 떨쳐입고 친척 이웃 서로 찾아/ 남녀노소 아이까지 삼삼오오 다닐 적에/ 와삭버석 울긋불긋 차림새가 번화하다/ 사내아이 연날리기, 계집아이 널뛰기요/ 윷놀아 내기하기 소년들의 놀이로다/ 사당에 설 인사는 떡국에 술과 과일/ 움파와 미나리를 무엄에 곁들이면/ 보기에 신선하여 오신채를 부러하랴/

농가월령가 1월령가의 일부이다. <농가월령가>는 조선시대 정약용의 둘째아들인 정학유가 지은 가사문학이다. 농가의 행사를 월별로 나누어 교훈을 섞어가며 농촌 풍속과 권농(勸農)을 노래한 장편가사로 대부분 3·4조와 4·4조로 구성되어 있다.

1월령가에서는 정월의 절기와 일 년 농사준비, 세배 풍속, 보름날의 풍속 등 정월의 풍경이 한 눈에 그려진다. 비록 설날에 관한 부분과 입춘에 오신채 먹던 모습 일부를 소개한 것이지만 12월령가를 다 들여다보면 농사의 세부적인 일상은 물론, 풍속을 어찌 이리 맛깔나게 표현해 놓았는지 감탄이 절로 난다. 물질적으로 풍요롭다 할 수는 없지만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는 자세로 넉넉한 마음과 긍정적인 시각을 가진 민족임을 알 수 있다.

농사에 관한 이야기가 절기와 맞물려 절묘하게 표현되어 있다. 서민들의 노동을 노래로 승화시켜 극복해 나갔던 풍습이 한 눈에 보인다. 당시 농촌사회의 상황을 노래로 표현한 것이 그림처럼 선명하게 그려진다. 이렇듯 절기와 세시풍속에 얽힌 일화를 보면 정과 흥, 해학과 풍유가 묻어난다.

그런 흥과 情 문화, 공동체 의식이 어느 때부터인가 점점 사라져가고 있다. 설날 때때옷 입고 온 동네 어른들을 찾아다니며 일일이 세배하던 아이들 풍경은 이제 그림에서도 찾아보기 힘들어졌다. 동네 웃어른을 찾아보기는커녕 집안끼리 돌아가며 차례 지내는 일도 사라진 지 오래다. 전통을 고수해 오고 있는 우리 집안에서도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난 뒤로는 명절에 미리 모이는 일이 없어졌다. 서로의 편의에 의해 명절 당일 새벽에 가서 차례만 지내고 온다.

사정이 이러한데 입춘방 풍습은 옛날이야기 속에서나 다룰 소재가 되었다. 어르신들과 ‘입춘대길’ 프로그램을 다루어 보았다. 당신들도 까마득히 잊고 지내는 일이라 한다. 산업화, 정보화의 발달은 편리를 가져왔지만 그만큼 마음을 차갑게 만들고 있다. 기계적 속성에 나도 모르게 젖어드는 것이 안타깝다. 오늘은 모처럼 장에 나가 입춘에 먹는 오신채를 장만해 와야겠다. ‘오신채를 먹으면 다섯 가지 덕을 갖추게 된다 했던가’ 다섯 가지 매운 맛 채소를 새콤달콤 무쳐 정신을 산뜻하게 다스려볼 요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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