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일보 사설] 설을 앞두고 이른바 '광주형 일자리'가 화제다. 이번 광주형 일자리를 간단히 말하면 인건비가 싼 해외에 나가는 대신 광주에 새 현대자동차 공장을 짓자는 얘기다. 광주시 노사민정협의회는 시와 현대차가 마련한 최종 협약안을 31일 의결했다. 35만대 생산까지 임금·단체협상을 유예한다는 조항을 유지하되 '노사협의를 통해 법에 따른 노동 활동을 할 수 있다'는 부속조항을 추가함으로써 이 모델이 제시된지 4년 7개월 만에 타결됐다.


이번 타결로 오는 2021년쯤이면 광주 빛그린산업단지에 연간 10만대의 스포츠 유틸리티 자동차(SUV)를 생산하는 공장이 들어선다. 새로 생기는 직·간접 일자리는 1만2000개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노동자들은 주 44시간 근무에 기존 완성차 업체 급여의 절반 수준 연봉인 3500만원을 받는 대신 정부와 광주시로부터 주거·교육·의료 지원을 받는다. 한계에 다다른 국내 자동차 산업에 돌파구를 마련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고는 하지만 찬·반이 아직 팽팽하다.

광주형 일자리는 슈투트가르트 지역경제 혁신모델을 벤치마킹한 사례다. 독일 남서부의 슈투트가르트는 벤츠, 포르쉐, 보쉬, 지멘스, IBM 등 세계적 기업을 비롯해 14만개의 기업이 밀집한 도시다. 동구권이 붕괴되며 실업률이 90%에 달하던 1990년대 노조와 기업, 지역 구성원들이 사회적 합의를 통해 이 모델을 만들었다. 노조는 조직 합리화와 임금 동결 등을 통해 생산성 향상에 주력하고 사 측은 사회 요구에 부응하는 제품 및 시장 전략을 개발하며 노동이사제 도입으로 경영권 일부를 양도했다.
지역사회는 노동 및 직업구조 변화에 적응하도록 교육하는 역할을 수행했다.


국내에서 찬·반이 갈리는 부분 중 하나는 실질적으로 노동자들에게 부족한 임금을 정부와 지자체가 메워준다는 점이다. 해당 지자체가 자기들의 돈을 자기들을 위해 쓴다는 건 뭐라 할 수 없겠으나 국민 세금인 국비를 특정 지자체의 특정 업체 근로자들 임금 보전에 쓴다는 건 이해가 안 된다는 주장이 있다. 다른 편에선 경제를 살리기 위해 일자리가 늘어나야 하고 그러려면 기업이 고용을 늘려야 하기 때문에 기업·지자체·시민이 윈윈하는 전략이어서 환영한다고 한다.


이해당사자인 현대차 노조와 민주노총은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이들은 자동차 산업이 포화인 상태에서 이런 방식은 사업성이 없으며 기존 자동차 업계의 일자리를 줄인다는 주장을 펴고 있다. 광주시가 590억원, 현대차가 530억원을 투자하는데 이 외에 4200억원을 금융권에서 차입하고 추가 자본금까지 확보해야 한다는 점도 문제다. 특정 지자체가 경제적으로 성장하고 안정되면 나아가 우리나라 전체의 경제에도 도움이 될 수 있다 할 수는 있겠지만 개운치 않다.


지난 이명박·박근혜 정권, 특히 MB가 내세웠던 '낙수 효과'가 떠올라서일까. 기업을 지원하면 그만큼 국민들도 혜택을 본다는 논리였지만 실상은 기업의 배불리기에 그쳤다. 어찌 됐든 진행에 들어간 만큼 기왕이면 성공한 모델이 됐으면 한다. 그래서 다른 지자체에도 이 모델이 퍼지고 국내 제조업도 다시 일어서길 바란다.

저작권자 © 충청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