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향숙 수필가

 

[이향숙 수필가] 하늘은 잿빛 구름이 가득하다. 붉은 기운이 잿빛 뒤로 살고마니 올라온다. 수평선을 깔고 앉아 꼼짝하지 않는 구름은 어르고 달래도 비켜 설줄 모른다. 진즉에 육십갑자를 넘어 선 동창생들과 수다삼매경에 빠진 뒷자리의 아주머니들은 헛걸음을 하였다며 왁자지껄이다. 사춘기 딸들을 앞세우고 늦둥이 아들을 업고 올라 온 옆자리 부부는 먹을거리를 풀어 놓고 아이들의 입에 억지로 밀어 넣어 준다. 동쪽을 향해 해돋이를 보게 해 달라고 기도하고 있는 중에도 스마트 폰에서 눈을 떼지 못한다.

배낭을 멘 청년이 데구르르 굴러 내린다. 일촉즉발의 순간 옆자리의 사람은 배낭을 잡으려 했지만 헛손질 이었다. 아래쪽에 자리를 마련했던 이들에게 겨우 잡혀 큰 사고를 막을 수 있었다. 가장자리에 있던 젊은이가 쏜살같이 달려가 다친 곳은 없는지 살펴보고 심폐소생술이 필요한지 가늠하고 있을 적에 사고자가 멋쩍게 일어선다. 배낭의 무게 때문에 중심을 잃은 건지 숙취 때문인지 의견이 분분한데 그가 머리를 숙여 고마움을 표한다.

오르는 길은 낮은 언덕을 더듬거렸다. 앞선 이들을 따라 걷다보니 계단이 나왔다. 수월하게 오를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버거웠다. 정자로 비켜서서 성산포를 내려다보았다. 하늘이 내려 앉아 별처럼 반짝이는 불빛들은 보석을 뿌려 놓은 듯 했다. 마음을 가다듬고 오르기를 수차례, 그만 되돌아설까 싶을 즈음 정상에 다다랐다. 군 복무 중 휴가 나온 큰아이와 예비 대학생인 작은 아이를 데리고 남편과 올라온 성산일출봉이다.

정월 초하루에는 일터가 번잡하여 해맞이를 한다는 것은 가당치도 않은 일이라 여겼다. 더구나 운동과는 거리가 먼 내가 아무리 낮은 언덕배기라 할지라도 욕심을 내었다면 그날은 일터에 나가지 못했을 것이다. 그저 TV 화면으로 보며 위안을 얻었엇다. 모처럼 가족여행이기에 특별한 일을 만들고 싶었다. 뒤에서 밀어주고 앞서 이끌어주는 가족이 있어 가능한 일이다.

삼대가 덕을 쌓아야 볼 수 있다는 해돋이, 끝내 마주 할 수는 없었지만 실패한 것은 아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다 해도 바다 깊숙이 부터 해가 떠오른 것을 부정할 수는 없는 일이다. 마침 배 한척이 꼬리를 그리며 바다를 가로 지르고 있다. 사방에서 탄성이 쏟아진다. 조금은 어수선했지만 서로 다른 모습으로 작은 소망을 안고 올라 온 이들의 보따리가 배에 실려 어디론가 가고 있다.

내려오는 길에 올려다 본 하늘에도 해님이 머리카락 보일까 숨어 있다. 그래도 성산포의 아침은 쾌청하다. 보석처럼 빛나던 포구의 모습은 색색의 지붕으로 화사하게 웃고 있다. 멀리 오른쪽 바다에는 소 한 마리가 누워있다. 용의 머리 같기도 하고 장수의 얼굴을 닮은 바위가 그곳을 응시하고 있다.

열심히 노력하면 무엇이든지 이루지 못할 것이 없다. 일출봉에 오르는 일도 그러리라. 하지만 그곳에 오른 목적은 이루지 못하였다. 그렇다고 절망할 일은 아니다. 지금 이 순간 삶에 지쳐 가슴이 서걱거리는 벗에게 이 말을 전하고 싶어 성산 일출봉에서의 추억을 두서없이 풀어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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