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완보 충청대 교수

 

[심완보 충청대 교수] 언제부터인지 모르지만 우리는 필요한 물건을 사기위해 마트에 가서 해야 할 일이 많아진 것 같다. 매장으로 들어가기 전, 쇼핑카트를 가져가기 위해서는 100원 짜리 동전을 잘 챙겨 가야 한다. 쇼핑과정에서도 필요한 물건이 어디에 있는지 물어 볼 직원을 만나기가 어려워 매장 이곳저곳을 보물찾기 하듯 헤매고 다녀야 한다.

쇼핑을 마치고 돈을 지불하기 위해 계산대로 오면 계산대마다 줄이 길게 늘어선다. 옆을 보니 셀프 계산대를 이용하면 줄이 없어 결제가 일찍 마무리 될 것 같아 스스로 구입한 물건들의 바코드를 스캔하고 카드로 결제까지 한다. 결제 후 주차장으로 와서는 쇼핑카트에 끼워 둔 100원 짜리 동전을 회수하기 위해 주차장 한쪽 구석까지 쇼핑카트를 밀고가 잘 끼워 넣어야 비로소 소중한 100원 짜리 동전을 회수하고 마트 주차장을 빠져 나올 수 있다.

고객이 일하는 시대이다. 고객이 일하는 시대에 우리는 자신도 모르게 많은 잡일에 시달리며 너무 많은 역할을 직접 수행하느라 늘 바쁘다. 이렇게 보수 없이 행하는 노동을 '그림자 노동'이라 한다. 사회가 변화하고 기술이 발달하는 과정의 틈새에서 기업이 해야 할 많은 일들이 교묘하게 개인과 소비자에게로 넘어가고 있다.

이렇게 임금을 받지도 못하고, 눈에 띄지도 않는 그림자 노동의 예는 일상에서 너무도 많다. 주요소에서 기름을 묻혀가며 직접 주유하고 결제해야 하는 셀프주유, 인터넷뱅킹을 사용하기 위해 공인인증서를 설치하고 매년 갱신해야 하는 일, 카페나 패스트푸드점에서 키오스크를 이용한 셀프서비스로 주문서부터 자신이 먹을 음식을 나르고 쓰레기를 치워야 하는 일, 공항에서의 탑승수속이나 병원에서의 예약과 수납을 직접 터치스크린을 통해 해야 하는 일 등이다.

기술이 발전할수록 그림자 노동의 종류는 늘어나며, 우리는 보수도 보람도 없는 온갖 잡일의 스트레스에 시달리느라 창조적인 생각을 할 겨를이 없다. 그림자 노동이 많아질수록 우리의 삶의 질은 떨어지지만, 그 경계를 명확히 인식하기 어려워 기업들은 더욱 교묘하게 고객에게 일을 떠넘기고 있다. 2016년 12월 미국 시애틀 아마존 본사 건물 1층에 ‘아마존고(Amazon Go)’란 명칭의 상점이 들어섰다. 아마존고는 고객이 계산대 앞에 줄을 설 필요도, 계산할 필요도 없다. 식료품 체인점에 아마존고 시스템을 적용하면 현재 5만 명에 가까운 직원이 하는 일을 4000여 명만으로 해결할 수 있다고 한다.

기업이 직원을 고용해 임금을 주고 해야 하는 많은 일들이 소비자에게 아무 보상 없이 떠 넘겨지고 이 단계가 성공적으로 정착이 되면 기업은 직원을 줄이려 한다. 그 결과 누군가는 일자리를 잃게 된다. 특히 저학력이나 고령자 등 사회적 약자의 일자리가 먼저 위협을 받는다. 급변하는 4차 산업혁명 시대의 미래는 생각보다 빠르게 다가오고 있다. 자동화 시스템이 늘어갈 때마다 일자리는 줄어들고 그림자 노동은 늘어간다. 그림자 노동으로 인해 우리의 소중한 시간을 빼앗기지 않고 일자리도 빼앗기지 않는 사회적 합의와 해결 방안이 필요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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