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광섭 컬처디자이너·수필가

[변광섭 컬처디자이너·수필가] 익숙해진 맘으로 사랑할 수 없듯이, 익숙해진 눈으로는 좋은 그림을 그릴 수 없다. 고정관념과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는 경이로움이 탄생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여행을 하고 모험을 하며 새로운 것에 끝없이 도전하고 탐구한다. 40여 년을 교육계에서 몸 담아온 연준흠 선생의 희망학교 특강은 아주 특별했다. 누구나 고민하고 도전하는 인생이모작을 이야기 할 것이라는 고정관념에 망치를 때리는 충격을 받았다.

그는 어려서부터 색을 판별창는 힘이 약한 색약이었다. 미술 시간만 되면 두려움이 가득했다. 남들처럼 멋진 그림을 그릴 수 없어 속상했다. 그래서 그림을 그리고 싶다는 간절함으로 크로키를 하게 됐다. 그는 체질적으로 노래를 잘 부를 수 없었다. 고음이 나올 수 없는 신체적 모순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남들처럼 노래도 부르고 음악을 즐길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악기를 배우게 됐다.

그는 영어교육을 전공했다. 한국교원대학교에서 영문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영어만 가르치는 교사가 아니라 인문학적 소양과 예술의 세계를 넘나들 수 있는 능력을 키우고 싶어 홍익대학교 대학원에서 미학을 배웠다. 한 한기 등록금이 반년치 월급이었다. 그래서 등록금을 가지고 학교에 갔다가 그 돈이 아까워 도로 내려오기도 했다.

교직생활 말년에는 캘리그라피에 손을 댔다. 크로키를 하고 미학을 공부하니 손글씨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색약이라는 신체적 약점을 극복할 수 있고 인문학적 메시지를 화선지에 담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자신의 마음과 손끝의 예술을 담을 수 있으며 학생들과 주위 사람들과 함께할 수 있는 장점도 있었다. 캘리그라피의 4대 발명품이 붓, 먹, 화선지, 한글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 중에 한글이 으뜸이다. 한글이 있기에 캘리그라피가 탄생했다는 것이다.

영어교사인 그가, 영문학 박사인 그가 자신의 전공과 무관한 길을 걷게 된 것은 간절함 때문이었다. 간절했기에 독학으로 크로키를 하게 됐으며, 간절했기 때문에 캘리그라피를 시작했다. 너무나도 간절했기에 음악을 하게 되고, 간절했기 때문에 미학을 공부하게 된 것이다. 그는 크로키를 하려면 먹물 가득한 종이가 배꼽만큼 쌓여야 한다고 했다. 한 일(一)자를 10년 쓰면 붓끝에서 강물이 흐른다고 했던가. 1만 시간의 법칙이라는 아웃라이어(OUTLIERS)가 생각나는 대목이다.

그는 40년을 그렇게 달려왔다. 뒤돌아볼 틈도 없었다. 퇴직한 지 3년째다. 현역보다 더 바쁘게 활동한다.  충북도교육청 산하 진로교육원과 단재교육원 등에서 크로키와 캘리그라피 봉사활동을 하고 있다. 대학의 평생교육원에서도 캘리강사로 활동하고 있다. 지역과 전국의 미술대전에서 10여회 수상했다. 영어교사의 화려한 변신은 이렇게 값지고 아름답다.

소확행(작지만 확실한 행복), 휘게(Hygge), 킨포크(Kinfolk), 웰빙, 웰다잉…. 인생 100세 시대에 유행하는 신조어다. 해야 할 일이 있고, 사랑하는 사람이 있으며, 건강하다면 영원한 삶을 꿈꾸는 인간의 욕망은 무죄다. 작은 선택이 큰 변화를 가져온다는, 도전은 오늘도 계속된다는 선생의 메시지가 얼음장 같은 내 마음을 두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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