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혜영 서원대 교수

 

[황혜영 서원대 교수] 2018년 12월 27일 국립현대미술관 청주관이 개관했다. 청주관은 국내에서는 최초로 미술품 보존과 전시, 관람을 동시에 할 수 있는 수장고형 미술관이다. 개관 이틀째 청주관 나들이를 갔다. 1층 수장고 전시실을 어슬렁거리다보니 프랑스 예술가 장 뒤뷔페(Jean Dubuffet, 1901-1985)의 <집 지키는 개>와 니키 드 생팔(Niki de Saint Phall, 1930-2002)의 <검은 나나> 두 조형물이 눈에 띄었다.

뒤뷔페는 정신질환자가 그린 그림에 충격을 받아 정규미술 교육을 받은 예술작품 대신 어린 아이와 정신질환자, 전쟁이나 수감의 트라우마를 경험한 사람들과 같은 비전문가들의 예술에 주목한다. 그는 이러한 예술 경향을 '원시적인, 초보적인, 천연의, 가공하지 않은'이라는 의미의 'brut'라는 단어를 써서 '아르 브뤼Art brut'라고 명명하였다.

뒤뷔페는 또한 늑대가 울부짖는 소리를 의미하는 '우르루프Hourloupe'라고 이름붙인 자신의 고유한 앵포르멜(비정형) 양식을 고안하여 연작으로 창작한다. 우를루프 양식은 이후 사회 비주류 예술가들의 아웃사이더 예술 경향이나 앵포르멜 예술에 영향을 준다. 특히 앵포르멜은 감옥에 갇히거나 전쟁을 경험하는 등 폐쇄적인 공간이나 심리적 압박 상태의 트라우마를 지닌 사람들의 표현에서 자주 공통되게 나타난다. 앵포르멜 양식에서는 작품 구성 요소들이 간격 없이 붙어 있는 형태가 특징적이다.

앵포르멜 작품 경향은 폐쇄된 공간, 억압적 심리의 발로로 자유에의 갈망과 해방의 욕구를 구현한다. 청주관에 전시된 고개를 들고 짖고 있는 개의 모습으로 된 조형물 '집 지키는 개'도 흰색, 검은색 그리고 흰색 바탕의 검은 스트라이프 무늬의 비정형 도형들이 빈틈없이 이어진 우를루프 양식으로 되어 있다.

니키 드 생팔은 부유한 프랑스 가정에서 자랐지만 어린 시절 경험한 성폭력과 성적학대의 상처로 인해 자아 내면에 트라우마를 지니게 된다. 그러한 작가에게서 어린 시절 깊은 상처의 무게를 덜어주고 내면의 고립된 자아가 해방되도록 도와준 것은 바로 예술 창작이다. 조각가였던 두 번째 남편 장 팅겔리과 교감을 나누면서 니키 드 생팔은 자신만의 고유한 조형 스타일을 구축한다. 흰색, 검은색, 파란색, 핑크색, 노란색, 연두색 등 다양한 피부색으로 표현된 나나 연작이 그것이다.

나나 연작은 모두 공통적으로 머리가 작고 몸매는 둥글넓적하고 글래머러스하게 과장되어 있다. 특히 가슴과 엉덩이가 극적으로 풍성하게 부각되어 있는 나나는 밝고 경쾌한 해방된 여성을 상기시킨다. 나나 연작에서 옷 또한 매번 하트나 꽃무늬, 줄무늬와 둥근 동심원 등이 그려진 원색의 화려한 원피스 수영복 같은 스타일로 여성의 풍만한 실루엣을 고스란히 드러내준다.

나나는 발랄하고 풍만한 여성의 몸을 통해 해방의 의지와 열망을 발산한다면 우를루프에서는 갇힌 자아의 제지되지 않은 울부짖음처럼 부정형 형체들이 이어진다. 정신적, 육체적 억압을 통쾌하게 거부하는 나나와 폐쇄된 자아의 공포를 날 것 그대로 쏟아내는 우를루프는 상반돼 보이지만 아이러니컬하게 모두 예술에서 발산되는 치유 에너지를 보여준다.

▲ 뒤뷔페의 우를루프 <집 지키는 개>                               ▲니키 드 생팔의 <검은 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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