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우천 입시학원장

[정우천 입시학원장] 학생들에게 5년 전의 자신에게 문자를 보내보라는 이벤트를 했다. 일부 특별한 내용도 있으나 대부분은 예상을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과거의 자신에게 꼭 하고 싶은 말이라는 게 결국 그 나이 때 부모나 선생 선배들이 했던 충고와 별다를 게 없었다. 만일 20년 후의 내가 오늘의 나에게 꼭 하고 싶은 말을 문자로 보낸다면 어떤 문자를 보낼까 생각해 보니 그것 또한 평범하지 않을까 싶다. 자기계발서나 삶의 성찰을 엮은 책에 흔히 나오는 그런 뻔한 말 아닐까. 문제는 미래의 나는 몸으로 겪으며 체화된 절실한 말을 현재의 나에게 보내는 것인데, 경험하지 못한 현재의 나는 그저 그런 흔한 충고로 흘려듣는다는 게 문제일 것이다. 겪고 나서야 깨닫는 게 우리네 삶의 한계이고 대부분은 그렇게 대충 흘려듣고 만다.

미래의 나는 지금의 내게 어떤 문자를 보낼까? "현재 겪고 있는 마음 상하게 하고 고통스럽게 하는 많은 일들, 뜻대로 되지 않아 자신을 괴롭히고 욕망으로 고통받는 대부분이 지나고 보니 그다지 중요하지도 대단치도 않으니 좀 더 편한 마음으로 현실을 받아들이고 즐겁고 행복하게 지내라!" 아마도 이런 문자일 것이다. 그런 당연한 결론을 생각하면서도 현실적 문제에 시달리고 괴로워하는 지금의 나는 여전히 마음이 편치 않다. 마치 시간이 지나면 흉터만 남고 아픔은 사라질 것이라는 사실을 뻔히 알면서도, 지금의 상처에 고통받고 괴로워하는 것과 같다.
  
다재다능한 천재 다산 정약용이 7살 때 지었다는 시 '小山蔽大山 遠近地不同'(작은 산이 큰 산을 가리니 이는 멀고 가까움이 다르기 때문이다.)처럼, 보통 인간은 눈앞의 작은 것에 눈이 막혀 그 너머의 큰 것을 보지 못한다. 삶은 고개의 연속이고 언덕을 넘어서야만 비로소 다음의 언덕이 보인다. 이 문제를 넘어선다고 삶의 모든 문제가 끝날 리 없거니와 오늘 만나는 이 고민이 내 삶의 마지막 고민일 리도 없다. 즐거움을 찾기 위한 삶이 아니라 괴로움을 피하고자 하는 행위로 우리의 삶이 구성된다면 누군가의 말처럼 그것은 서서히 하는 자살과 다름없다. 문제와의 공존 고통과의 화합 그리고 그 속에서 찾아지는 기쁨과 희열의 그런 넘친 삶이 아니라면 20년쯤 후의 나는 지금을 후회하며 회한으로 과거를 돌아볼 것이 틀림없다.

삶의 내비게이션이 경로를 이탈했다고 경고음을 울리며 요란하다. 어차피 인생은 경로대로 가지지도 않고 경로대로 진행하는 것만이 최선이라 확신할 수도 없다. 이제껏 온 길이 아까워 고집스럽게 경고를 무시하고 가는 것도 어리석을 것이다. 어쩌면 경로를 수정하므로 그저 기존의 경로대로 갔다면 절대 볼 수 없었던 새로운 풍경도 볼 수 있는 것 또한 삶이다. 어떤 길이 좋은 길이었고 더 보람 있는 길이였다고 어떻게 예단하고 누가 장담할 수 있을 것인가. 더 많은 날이 간 후에 그때 선택했던 그 길이 맞았다고 할 만한 길을 찾아 그저 최선을 다하고 오늘을 충실히 보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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