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향숙 수필가

 

[이향숙 수필가] 세월이 무색하리만치 변함없는 모습이다. 흙을 고르게 펴 평평하게 만든 주차장은 겨울가뭄으로 걸음마다 먼지가 풀썩인다. 안내소에 직원이 보이지 않는다. 문이 활짝 열려 있어 기웃거리며 두 번째 집을 지나칠 때쯤 그를 만날 수 있었다. 수리중이지만 둘러보고 가란다. 신혼여행 때 들른 곳인데 가족과 함께 여행 중이라 하자 차茶를 대접하겠다고 한다. 정중하게 사양하며 조용히 둘러보겠다고 했다.

안으로 깊숙이 들어가 마을의 좌측 가장자리를 보면 원마을 입구 표적인 느티나무가 수호신처럼 서있다. 어림잡아 서 너 명이 손에 손을 잡고 빙빙 돌아도 걸림이 없을 만큼 넉넉하여 마을의 역사를 보여주는 듯 하다. 저만치정낭이 보인다. 하나가 끼워지면 이웃집을 간다는 뜻이며 두 개는 가까운 곳에 나가고 세 개는 식구가 멀리 있어 아무도 없다는 뜻이라는데 세 개가 끼워져 수리중임을 알리고자 하는 듯하다. 예부터 도둑이 들지 않으며 서로 믿고 사는 그들의 삶이 각박한 이 시대에도 찬찬히 흐르는 물처럼 편안해 보인다.

기계도 쉬어가며 기름을 칠해주어야 부드럽게 돌아간다. 열병처럼 한없이 끓어오르기만 하던 청춘의 사랑도 된서리 맞은 꽃잎처럼 풀썩 주저앉기도 한다. 살 얼어 거친 바람이 불어와도 아픔을 느끼지 못하는 때도 있다. 사람도 약해진 곳을 보완해주어야 건강하게 오래 살아 갈수 있다. 수많은 사람들이 오가는 민속마을도 마찬가지겠지 싶다. 주민들의 모습을 고스란히 보여주며 사생활 침해는 허다하게 일어나도 멀리서 온 관광객들에게 민낯을 보여주는데 주저함이 없었던 그들에게 가끔은 휘장으로 가려 주어야지 싶다. 철저히 자신의 모습을 감춘 채 관음증 환자처럼 타인의 삶을 들여다보는 우리들이 감사해야하는 부분이기도 하다.

마을 풍경은 스물다섯, 신혼여행에서 만났던 모습과 별반 다르지 않아 추억이 새록새록 떠오른다. 볏 집을 이용해 빗물을 항아리에 받아쓰는 것이 그대로 재현된 모습은 안동네 처녀의 머릿단 같다. 그때는 새신랑이 항아리를 지게에 고정시켜 물동이를 메는 체험을 했었다. 스무 살이 된 작은아이가 흉내 낸다. 흑돼지를 키우는 돼지우리도 변함이 없다. 특산품을 전시 판매하던 곳은 잠시 휴업중이지만 상품의 지짓돌로 쓰던 댓돌은 상형문자처럼 바닥에 박혀 있다. 장독대에는 마을사람들이 손수 담근 약초가 익어가고 있다. 아마도 안내원이 대접하려 했던 茶이리라.

그동안 커피집이 들어섰나보다. 휴업으로 맛은 볼 수 없었다. 변화하지 않으면 외면받기 십상인지라 이 또한 궁여지책이 싶다. 부조화 같지만 세월의 흐름에 순응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이 사람도 눈을 뜨면 제일 먼저 커피부터 찾는다. 평범한 사람들의 기호식품중 하나 일터. 커피집이 들어서야만 했던 상황 또한 훗날 역사가 될 것이다.

다만 민속마을의 이용수칙을 주민의 입장에서 생각하며 그들의 이해와 배려를 감사하게 느끼는 관람객이 되었으면 한다. 개인적으로 세월이 흘러 우리 아이들이 반려자를 만나고 부모가 되면 오늘을 추억하며 삼대가 다시 한 번 마을길을 걷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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