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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을 담다김영애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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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9.02.22  14:2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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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애 수필가] 나는 옛날 사람처럼 음력으로 구정 설이 지나서야 비로소 한해가 시작되는 생각이 든다. 내 생일을 음력 구월 초이틀 날로 정하고 지내서 인가보다. 음력과 양력이 혼동 되어서 가족들이 내 생일을 잊고 지날 때도 있었다. 그 후로는 달력에다 무슨 기념일이라도 되는 양 음력 생일이 닿는 양력 날짜에다 크게 표시를 해둔다. 설 명절을 지나고 나면 진짜 나의 새해가 시작이 된다. 구정 설날을 전후해서 전화통에 불이난다.

"카똑 카똑" 하고 밤낮으로 시도 때도 없이 핸드폰 신호음이 시끄러웠다. 오랫동안 잊고 지냈던 사람들마저도 연말 연초나 명절이 되면 “카똑 카똑” 하면서 안부를 전해온다. 반가운 마음에 열어보면 똑같은 그림과 똑같은 내용의 문자 메시지 내용들이다. 진정성이나 정성이 담겨져 있지 않은 내용들이라서 반갑지도 않고 감동이 전달되지 않는다. 마구 퍼 나르기 식의 인사이다.

한 결 같이 복을 많이 받으라는 내용들이다 복이 넘쳐나게 전송되어온다. 심지어는 단체로 보낸 메시지여서 나도 모르는 일면식도 없는 이들이 주고받는 대화로 신호음이 끊임없이 카똑 카똑 거려서 거부감이 들기도 했다. 차단을 하고 휑하니 나와 버릴 때는 왠지 씁쓸한 마음이 들었다. 그런 안부조차도 보내지 않고 지내는 내가 이기적이거나 혹은 부족한 사람은 아닌가하고 의구심이 들기도 했다.

해마다 그 수많은 사람들로부터 넘쳐나게 보내온 복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복을 담을 나의 복주머니가 작아서 넘쳐 흘려버린 건지 아니면 복주머니에 구멍이라도 나서 다 새어버린 걸까, 복의 근원에 대해서 생각을 하게 된다. 복을 받으라고 선심 써주는 사람들은 넘쳐 나는데 복을 짓고 복을 주라는 사람은 그 누구도 없다. 사람들은 누구나 복을 누리며 살고 싶어 한다. 그 복은 어디로부터 오는 걸까.

복이란 행복과 같은 의미로서 만족할만한 기쁜 행복이란 뜻이기도하다. 절대적인 존재자나 누군가가 베푸는 것만을 기다려 받는 것이 복을 받는 일이라고들 생각한다. 무조건 받기만 하는 일은 그리 보람된 행복은 아니다. 그런 복은 진정한 복이 아니라 어쩌다 생기는 요행이나 다를 바가 없다. 복을 받기만을 고대하는 일은 수동적인 자세이며 복을 짓는 일은 능동적인 자세이다. 아낌없이 베풀고 줄 수 있는 존재가 되는 일이 참된 행복이다.

나만의 안위와 기쁨을 위해서 덕을 쌓기보다는 남을 위해서 덕을 쌓는 행위는 복된 기쁨이 된다. 가장 만족스러운 기쁨의 상태는 베풂으로서 얻는 기쁨일 것이다. 나로 인해 누군가가 행복해진다면 나의 기쁨은 배가 된다. 복을 담을 그릇이 잘 만들어져 있을 때에 그 복을 가득 담을 수도 있다. 자신은 물론 타인까지도 함께 행복한 삶을 영위하기 위해서는 늘 아낌없이 베풀며 사는 사회가 되면 좋겠다. 올 한해에도 복을 많이 짓고 복을 많이 받을 수 있는 행복한 시간이길 꿈꿔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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