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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미는 2차 정상회담에서 비핵화 실행조치와 상응 조치를 주고받는 '하노이 담판'이 결렬되자 제재해제 및 '영변 핵시설 폐기 및 플러스알파(+α)' 문제를 놓고 첨예한 장외공방을 벌였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하노이 선언' 채택 불발 직후인 지난달 28일 오후 2시 15분 숙소인 JW메리어트 호텔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북한이 '영변 핵시설 폐기' 카드 하나를 꺼내 들면서 전면적 제재해제를 요구했다고 밝히자, 그로부터 10시간 뒤인 1일 오전 0시 15분 북한 리용호 외무상과 최선희 부상은 숙소인 멜리아 호텔에서 맞불 기자회견을 열어 "민수경제와 인민 생활에 지장을 주는 일부 제재해제만 요구한 것"이라고 반박했다.

핵담판 결렬의 후폭풍으로 북미가 여론전에 돌입, 당분간 냉각기류가 형성되면서 지난 연말 연초 정상 간 '톱다운 외교'를 통한 돌파구 마련으로, 정상 간 재회로까지 이어진 북미협상이 다시 교착상태를 맞게 되는 것 아니냐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기자회견에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영변 핵시설 전체를 해제하겠다는 의향을 밝히며 그에 대한 상응 조치로 제재해제를 요구했다면서 "영변 핵시설은 매우 큰 것이지만 그것만으로는 우리가 하는 것을 이루기에 충분치 않다"고 의미 있는 '+α'의 추가 조치가 있어야만 제재문제를 손 볼 수 있다는 입장을 재확인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특히 북한이 전면적 제재해제를 요구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미국이 영변 이외에 추가 우라늄 농축시설 등을 인지하고 있다는 사실에 북한이 놀랐다면서 미국은 북한에 대해 속속들이 알고 있다는 주장도 내놓으며 은근히 북한을 압박했다.

이에 리 외무상과 최 부상은 자정을 넘긴 시각에 멜리아 호텔에서 심야 기자회견을 열어 "우리가 요구하는 것은 전면적인 제재해제가 아니고 일부 해제, 구체적으로는 유엔 제재 결의 11건 가운데 2016∼2017년 채택된 5건, 그중에 민수 경제와 인민 생활에 지장을 주는 항목들만 먼저 해제하라는 것"이라고 반박했다.

미국이 이러한 상응 조치를 한다면 영변 지구의 플루토늄과 우라늄을 포함한 모든 핵물질 생산시설을 미국 전문가들의 입회하에 양국의 공동 작업으로 영구적으로 완전히 폐기한다는 '현실적 제안'을 했으나, 미국이 '한가지'를 더해야 한다고 끝까지 주장하면서 합의가 이뤄지지 못했다는 것이다.

리 외무상은 북한이 핵·장거리 로켓 시험발사 영구적 중지에 대한 문서형태의 확약 의사를 전달했다는 사실도 공개했다.

결국 비핵화 실행조치와 상응 조치의 선후 관계를 둘러싼 양측간 이견이 끝내 좁혀지지 못한 것으로, 이는 이번 담판에서 영변 핵시설 폐기 카드가 지니는 값어치에 대한 양측의 현격한 인식 차를 그대로 보여준다.

트럼프 대통령은 "김 위원장이 우리가 원하는 것보다 덜 중요한 부분에 대해 (실행조치를) 하기를 원한다. 한 단계만 얻어내고 모든 지렛대를 포기하게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제재해제는 '큰 양보'"라며 영변 핵시설 폐기라는 단일 카드만으로 제재해제를 내주기에는 '등가'가 성립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반면 리 외무상은 영변 핵시설 폐기가 "조미(북미) 양국 사이의 현 신뢰 수준을 놓고 볼 때 현 단계에 우리가 내 짚을 수 있는 가장 큰 보폭의 비핵화 조치"라며 "우리가 제안한 것보다 더 좋은 합의가 이뤄질 수 있는 것인지는 이 자리에서 말하기 힘들다"라고 주장했다.

아직 초기 단계인 북미 간 신뢰 수준을 감안할 때 영변 핵시설 폐기는 '부분적 재제 해제'와 걸맞은 충분한 가치를 갖고 있다는 것이다.

양측이 회담 결렬에 대한 책임론을 놓고 부딪히면서 북미간 '포스트 하노이' 대화에 험로가 예상된다는 관측이 나온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제재해제를 위해선 미국이 원하는 걸 얻어내야 한다는 입장을 고수하며 "언제든 걸어 나갈 준비가 돼 있어야 한다"고 배수의 진을 쳤다. 반면 리 외무상은 "우리의 이런 원칙적 입장에는 추호도 변함이 없을 것이며 앞으로 미국 측이 협상을 다시 제기해오는 경우에도 우리 방안에는 변함이 없을 것"이라고 맞섰다.

이에 따라 일정 기간 냉각기가 불가피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트럼프 대통령은 다음 북미 정상회담이 언제쯤 열릴 것으로 보느냐는 질문에 "빨리 열렸으면 좋겠지만 오래 걸릴 수도 있다"며 더는 '시기'에 구애받지 않겠다는 '속도조절론'을 재확인했다.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도 당장은 북한과의 실무협상 계획이 없다며 "내 느낌으로는 시간이 좀 걸릴 것 같다"고 말했다.

최 부상도 "다음번 회담이 정해진 것은 없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국무위원장 동지께서 미국식 계산법에 대해서 이해가 잘 가지 않아 하는 듯한 그런 느낌을 받았다. 앞으로의 이런 조미 거래에 대해서 좀 의욕을 잃지 않으시지 않았는가 하는 느낌을 받았다"고 말해 이번 일로 북미 정상 간 신뢰구축에도 차질이 빚어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그러나 북미 양측 모두 판을 깨려고 한다기보다는 장기전에 대비, 앞으로 지루하게 전개될 비핵화-상응 조치 간 주고받기 협상에서 주도권을 확보하려는 기싸움 격화 차원이 아니냐는 관측도 적지 않다.

트럼프 대통령도 "(협상 테이블을) 박차고 나온 게 아니었다"며 이번 회담이 생산적이었고 김 위원장과 계속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싶다고 말했다.

리 외무상도 회담 결렬의 책임을 미국 측에 돌리면서도 "조미 양국의 수뇌분들은 훌륭한 인내력과 자제력을 가지고 이틀간에 걸쳐서 진지한 회담을 진행했다"며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비판은 자제했다.

이날 북미 정상이 '빈손'으로 헤어졌지만, 세라 샌더스 백악관 대변인의 SNS를 통해 공개된 김 위원장이 활짝 웃으며 트럼프 대통령과 '작별 인사'를 하는 사진만 하더라도 두 정상이 대화의 끈을 이어가며 장기 교착시 다시금 톱다운 해결에 나서 대화 재개를 추동할 가능성을 보여주는 대목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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