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순 전 복대초 교장·시인

 

[박종순 전 복대초 교장·시인] 교직을 떠나온 지 만 1년이 되었지만 교단의 길에서 만난 사람들과의 정은 깊고도 새로운 인연을 만들며 생을 이끌고 있다. 30년 전 내수초에서 가르친 제자는 청주의 모 대학을 졸업하고 나의 모교인 청주교육대학교에 편입하여 어엿한 초등학교 교사가 되었다. 그 당시에도 반장을 하며 과묵한 성품이었는데 교직의 길에 들어선 제자가 여간 자랑스러운 게 아니다.

부모님 또한 신앙이 같아서인지 제자 못지않게 각별히 지내는 사이가 되었다. 어머니한테 몇 번이나 성지순례제안이 들어왔다. 한번은 바쁘다 미루고 얼마 전 새벽 여섯시에 떠나는 성지순례에 함께 가게 되었다. 강원도 춘천 죽림동 주교좌성당에서 6.25순교자 성직자 묘역을 참배하고, 경기도 양평의 양근 성지에 이르니 어느새 봄이 와서 아름다운 성지를 감싸 안고 있다. 지금부터 200년 전 동정부부로 지내다 30대에 둘 다 참수형을 당한 조숙 베드로. 권천례 데레사 동상 앞에서 절로 고개가 숙여지며 신앙의 신비에 몸이 떨려왔다. 수많은 신앙의 조상들이 하느님을 위해 하나뿐인 목숨을 내놓는 용기는 어디서 오는 것인가?

뜻밖의 놀람은 우리 순례단을 위해 담당신부님이 11시에 미사를 집전하시는데 입술을 열어도 말이 제대로 나오지 않아 마치 강한 독일어를 하시는 듯하여 당황하였다. 무슨 연유로 말막힘 증상이 왔는지, 입만 열면 술술 나오는 게 말인데 저토록 어려울 수도 있구나! 물론 신부님은 개의치 않고 씩씩하게 미사를 이어가시며 강론엔 간신히 유모어도 한 마디 하셨지만 안타까움 속에 자연발화의 현상이 눈에 보이지 않는 기적이라는 생각을 처음 해보았다.

현직에서 교단의 멘토로 존경해오던 선배님도 정년 후 갑자기 뇌경색으로 쓰러지시어 병원에서 재활치료를 받고 계시다. 휠체어에 의지해 움직이시고 가장 안타까운 것은 말씀이 어눌해져 불편을 겪고 있는 점이다. 하고 싶은 말만 술술 할 수 있어도 더 이상의 소원은 없다 하시며, 선배님은 여러 말 중에서도 ‘고맙습니다’, ‘사랑합니다’라는 단 두 마디만 잘 할 수 있어도 그 사람의 삶은 성공이라고 백지에 써가며 내 손을 잡고 애써 일러주시려 한다. 돌아보건대 ‘고맙습니다’라는 말에 그가 하는 무슨 일이나 잘 될 터이고, ‘사랑한다’는 말에 부족함도 어여삐 보이고 주위에 사람이 모여들게 될 터이니 지당한 말씀.

미상불 ‘고맙습니다. 사랑합니다’ 라는 말은 쉬운 듯 하지만 먼저 자신을 내려놓아야 하고, 자신을 가감없이 드러내는데서 나오는 용기있는 말이다. 이제 새 봄을 맞으며 희망찬 새 학기가 시작되었다. 대부분 처음 만난 것이기에 서로의 존재는 신비롭고 일 년 동안 받은 최고의 선물이다. 친구사이에 스승과 제자 사이에 각급 학교 동료사이에 ‘고맙습니다. 사랑합니다’ 그 한마디를 주고받을 수 있다면 행복은 시작이다.

첫 만남이 마음에 안차더라도 “만나게 되어 고맙습니다. 근데 사랑합니다.” 하면 교정 여기저기서 사람꽃이 피어 교육의 효과도 배가 될 것이다. 마음 밭이 좋으신 신부님과 선배님의 말씀도 흐르는 물처럼 술술 나왔으면 하는 마음 간절하다. 교육도 별게 아니다. 만남과 사랑이다. 더욱이 진정성과 변화가 함께 한다면 글로벌 인재로 가는 길도 열리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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