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니다큐 『대한성공회 청주성당을 가다』
등록일 : 2015-06-09 18:17:53
[충청일보] 충북 청주 우암산의 숲속 산책로처럼 이어진 가파른 언덕길을 오르면 산자락에 아담하게 지어진 한옥성당이 아름다운 자태를 드러낸다.

세월의 흔적을 머금은 지붕과 처마의 선이 고풍스러운 고택의 모습.

일반 한옥과 다른 기와의 무늬와 독특한 창틀의 형태

충북 유형문화재 제149호로 지정된 청주 성공회 성당이다.

성공회는 1534년 로마카톨릭교회로부터 분리된 영국의 국교이다. 당시 영국 국왕이었던 헨리 8세는 왕비 캐서린과의 이혼문제를 로마카톨릭의 캔터베리주교가 승인을 하지 않자 로마카톨릭으로부터 분리 독립을 선언한다.

이후 영국의 해군 군종신부인 존코프 (한국명:고요한)가 한국 교구의 첫 교구장이 되었다.

◀ 인터뷰 ▶
[도예가 이용강 선생님 인터뷰 : 1890년 9월 28일 존코프 주교. 한국명으로 고요한 주교님이 제물포에 당도하면서부터 선교가 시작되었습니다. 제물포에 당도하면서부터 우리의 성공회가 이나라에 뿌리를 내리게 한 장본인이 고요한 주교님이신데 한국이름으로 개명까지 하면서 상당히 애착을 갖고 이땅에 성공회의 뿌리를 내리게 하신분입니다. ]

특히 대한성공회는 선교초기부터 한국의 문화를 이해하고 존중했으며 토착화를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이에 한국 사람들에게 가장 익숙한 건물양식인 한옥을 접목시키면서 동양과 서양의 조화를 이루는 한옥성당의 모습을 갖추게 된다.

한국건축양식으로 지어진 성공회의 한옥성당은 한국 최초의 한옥성당인 강화읍 대한성공회 강화성당을 시작으로 온수리 성당, 충북의 진천성당과 음성성당 그리고 청주성당 등 아름다운 문화유산으로 남아있다.

청주에 성공회가 처음 들어오게 된 것은 1922년 영국인 선교사 휼렛(George.E.Hewlett, 유신덕) 신부가 청주 대성동에서 가정 예배를 가지면서 퍼지게 되었다. 이후 청주 성공회 성당은 세실 쿠퍼(Cecil Cooper,구세실) 주교에 의해 1935년에 세워진다.

여느 성당과는 다르게 청주 성공회성당은 청주 시내가 한 눈에 내려다보이는 우암산 자락 작은 언덕 위에 지어졌다.

◀ 인터뷰 ▶

[신부님 인터뷰 : 다른 지역과 달리 청주에서는 내려다볼 수 있는 지역을 선정했던 것 같습니다. 그러다보니 언덕에 올라와있고 또 위치 자체가 언덕이라 전 지역을 조망하고 넓게 선교하겠다는 의지를 표출했던 것 같습니다. ]

성당은 낮은 기단 위에 사각형의 주춧돌과 사각 기둥을 세운 목조 한옥 건물로 정면4칸, 측면8칸의 9량가 납도리형의 겹처마 팔작지붕을 올린 구조이다. 외벽 하부는 붉은 벽돌로 쌓았으며 상부는 시멘트 모르타르로 마감했다.

또한 내부는 중앙에 2열로 고주를 세우고 고주 양쪽에 퇴보를 걸어 측랑을 두어 만든 3랑식의 성당 내부를 구성하고 있다.

특히 창문은 상부를 둥근 아치형으로 꾸몄으며 출입문의 상부는 네모의 교살창으로 장식했다.

성당으로 들어서는 출입문은 하나가 아닌 2개의 출입문 구조이다. 당시 남녀가 내외 유교문화를 반영해 양측에 출입문을 두고 중앙에 휘장을 쳐 남·녀석을 각각 구분 지었다고 전해진다.

성당에서 은은하게 풍기는 목재 향기와 닳아버린 마룻바닥이 세월의 흔적을 말해주는 듯하다.

성당의 내부에서도 한국의 전통문화를 곳곳에서 찾아 볼 수 있다. 서까래가 드러나는 연등천장은 소박하지만 기품이 있다.

라틴어가 아닌 ‘생(生)’자가 적힌 세례대와 ‘왕(王)’자가 새겨진 제대. 그리고 우리나라 전통 문양인 자개로 수놓아진 사제석이 아름다움을 더한다.

선교초기부터 한국의 문화를 받아들이고 성공회 토착화에 바탕을 두고 지어진 청주 성공회 성당은 동·서양이 조화를 이룬 성당건축으로서의 청주를 대표하는 한옥성당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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