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 문화산책 - 4.19 혁명 (민주주의를 향한 뜨거운 외침)
등록일 : 2016-04-19 13:56:57
<오프닝>

안녕하세요, 충청일보 김도원입니다.
오늘은 4월 19일입니다.
1960년, 민주주의를 향한 뜨거운 외침이 울려 퍼진 4.19혁명이 일어났던 날인데요.
잊지 말아야 할 그날의 역사를 되짚어보겠습니다.

<4.19 혁명>

4.19혁명은 1960년 4월 19일, 이승만 정권과 자유당의 부정선거에 반발하여 학생들이 중심이 되어 일으킨 혁명입니다. 청주는 마산, 부산에 이어 학생 혁명운동 3대 발원지로 꼽힙니다.

4.19혁명의 최초 도화선은 1960년 2월 28일 대구에서 고등학생을 중심으로 불붙여져 전국적으로 확산되었는데요, 특히 3월 15일 선거 당일에는 시민들도 학생 시위에 합류하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 4월 11일, 그동안 행방불명이었던 마산상고생 김주열이 눈에 최루탄이 박힌 채 시체상태로 바다에서 발견되자, 전국의 학생들과 국민들의 분노는 극에 달하게 되었습니다.

대학생들이 총궐기 선언문을 낭독하고 시민들과 함께 혁명적 투쟁을 시작하자 정부는 계엄령을 선포했습니다. 수많은 사상자와 엄청난 희생을 가져온 끝에 결국 이승만 정부는 물러나게 되었습니다.

<역사의 한 페이지, 청주>

1960년 4월 19일, 동아일보 3면입니다. “청주서도 이천학생 참가”라는 제목의 기사에는 4.19 혁명의 발단, 이 곳 도청 앞에서 벌어진 청주 학생운동에 대하여 기록되어 있습니다.

⌜18일 낮, 이곳 청주공업고등학교를 비롯하여 청주상고‧청주여상‧청주고교학생들 약 2천명이 일대 “데모”를 감행하였다. 이날의 “데모”는 오전 열한시 오 분경 청주공고학생 약 육백여명이 “데모”를 시작한데 발단되었던 것이다.

“정부는 마산 학생사건에 책임져라”, “경찰은 학원에 간섭치 말라”라는 구호 등을 외치며 행진을 계속하다가 청주고교 앞에 이르러 그 곳 학생 약 천명과 다시 합세하여 도청 앞으로 몰려들었다. 이때 대거 동원된 경찰이 곤봉과 의자 등을 던지며 데모를 제지하려들자 학생들은 청주역 뒤 무암산으로 쫓겨 갔다.⌟

<청주 공고의 학생 운동>

이렇게 역사의 한 페이지에서 청주 학생들의 민주주의를 향한 열망을 찾아볼 수 있는데요. 그러한 4.19정신을 담은 4.19 학생혁명 기념비가 여기, 청주공고에 세워져 있습니다.

이 기념비는 56년 세월이 흐른 지난달 15일 세워졌습니다. 높이 2.7m, 가로 2m의 규모로 뒷면에는 4.19 학생혁명에 대한 생생한 기록을 담았습니다.

기념비의 투박하고 굳건한 모습이 ‘자유‧민주‧정의’의 4.19정신을 묵직하게 담아내고 있는 듯 합니다. 제막식에는 당시 학생혁명을 주도했던 청주공고 졸업생들이 직접 참석해 그 의미를 더했습니다.

<클로징>

4.19혁명은 한국정치사에서 역사적으로 큰 의미를 갖는 일대사건이었습니다.

싸우고 투쟁하며 얻어낸 민주주의, 그리고 그들의 거룩한 희생.

우리가 결코 잊어서는 안 될 값진 역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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