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 박여성 (朴汝成·1860년 9월 30일~1908년 10월 13일)

▲ 박여성 기적비.
▲ 박여성 의병장이 급습했던 강원 인제군청자리는 현재 인제남초등학교가 위치해 있다.

1907년 8월 평양진위대 해산 후
청풍으로 내려와 의병 모집
천남전투서 일본군 5명 등 전과
양재원 등과 합세 일진회 응징
1908년 충주서 교전 중 전사
공훈 인정 받아 '독립장' 추서

[충청일보 배명식기자] 박여성은 1860년 9월 30일 충북 제천에서 태어났다.
1907년 8월 평양진위대가 해산당한 후 청풍으로 내려와 조동교, 황대성, 조동규, 방필성, 박덕준 등과 함게 의병을 모집, 의병장으로 추대돼 활동했다. 

이 시기 제천에는 서울에서 파견된 일본군의 전면 공세를 피해 의병들이 몰려들었다.
1907년 8월 15일 저녁 천남 뒷산 서울고개(제천 동현동의 백배미 남쪽에 있는 고개), 조을치(제천 두학동에서 강원 영월 남면 토교리로 넘어가는 조리재)에 매복했던 연합 의병 부대와 청풍 가는 길 쪽 마을에 숙영하던 일본군 사이에 전투가 벌어졌다. 

박여성은 35명의 의병을 이끌고 이강년, 민긍호의진 등과 연합해 일군과 4시간이 넘는 접전을 벌여 큰 승리를 거두었다. 그날 밤 의병 부대가 다시 일군을 포위하자 일군은 견디다 못해 의병 포위망을 뚫고 충주로 퇴각했다.

당시 제천 천남전투에서 의병부대는 일본군 5명을 사살하고 13명을 부상 입히는 전과를 올렸다. 
해산 군인과 포군 출신의 의병들이 연합해 올린 최초의 승전이었다. 일제의 의병 탄압 기록인 '조선폭도토벌지'에는 "박여성이라는 이름만 들어도 치를 떨었다"고 서술돼 있다.
그는 또 원주진위대 참위 출신 양재원 등과 합세해 인제를 공격, 군청과 주재소, 우편소를 습격하고 친일단체인 일진회원을 응징하는 등 활동을 벌였다.
1908년 10월 13일 충주 하달천에서 일군과 교전하던 중 전사,순국했다.

그의 묘소는 자양영당이 있는 제천시 봉양면 공전리 장담마을 충주박씨 선산에 안장됐다. 
제단에는 그의 이명인 성열(成烈)로 돼 있으며 부인 파평윤씨와 합장돼 있고 묘소 앞에는 '의사박여성선생기적비'가 세워져 있다. 정부에서는 그의 공훈을 기리어 1990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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