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광열 충북육상연맹 전무

"학생부 발굴·육성 비중 커
올림픽·세계선수권 대회
메달 입상 선수 배출이 꿈"

[충청일보 이정규기자]  충북의 우수 육상 선수 발굴을 위한 충청북도 시·군대항 역전마라톤 대회가 올해로 38년째를 맞았다. 지역에서 가장 오랜기간 중장기 마라톤 선수 육성에 기여한 이 대회가 성공적으로 이어갈 수 있도록 노력한 장본인이라면 엄광열 충북육상연맹 전무이사(59·사진)를 꼽지 않을 수 없다. 선수와 지도자까지 일생을 '육상맨'으로 살아온 엄 전무를 만나 그의 육상 인생과 역전마라톤 대회에 대한 소회를 들어봤다.

-육상 선수 출신으로 알고 있다. 처음 인연과 언제까지 선수로 뛰었는지.
"1974년 중학교 2학년때였다. 현재 충북도체육회 상임부회장을 맡고 있는 이종찬 부회장이 교사로 재직하고 있을 때다. 체육시간에 당시 이종찬 선생님의 눈에 띄어 육상을 해보지 않겠느냐는 제안을 받았다. 주저없이 육상을 시작했고 그렇게 선수 생활이 시작됐다. 선수 생활은 고등학교때까지 이어졌다. 물론 충청일보 역전마라톤 대회에도 참가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1979년에는 동양나이론 실업팀에 입단했다. 그러다 선수 생활 중 관절 부상을 입어 1981년 원치 않았지만 은퇴하게 됐다."

-지도자의 길을 걸은 지 상당히 오래된 것으로 알고 있다.
"군 제대 후인 1984년부터 지도자의 길을 걷게 됐다. 처음에는 충북도교육청 순회코치로 시작했다. 이듬해인 1985년에 충북도체육회 순회코치로 자리를 옮겼다. 1998년까지 주로 충북체육고를 맡았지만 초등학교와 중학교, 고등학교 학생 선수를 전담했다. 그러다 1999년 청주시청 육상부 감독으로 발탁됐다. 퇴임 시기가 얼마 남지 않았지만 20년이나 됐다."

-육상경기연맹과의 인연과 지도자 생활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이 있었다면.
"육상연맹은 1984년에 사무국장으로 부임하면서부터 인연이 됐다. 2008년까지 24년을 역임하고, 2009년부터는 전무이사를 맡아 육상연맹의 행정을 담당하고 있다. 기억나는 일이라면 학생들을 지도할 때 청주시청 유영진 코치가 충북체고 1학년때 일이다. 당시 유영진, 이성운 선수가 전국체전 10km 단축마라톤대회에서 함께 1위로 손을 잡고 들어왔다는 이유로 실격을 당했다. 어이없고 안타까운 일이었다. 춘천 전국체전에서는 남자고등부와 여자고등부 5000m를 모두 금메달을 획득했다. 같은 대회 여고 10km 단축마라톤에서는 충북 선수들이 1, 2, 3, 4등을 하는 진귀한 일이 발생했였다. 운동지도자로서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은 아무래도 경부역전마라톤 대회다. 초창기 1960년도에는 충북이 3연패를 한 적이 있다. 하지만 이후 선수와 예산 부족으로 참가 조차 못했다, 그러다 25~26년전 어렵게 참가를 하게 됐다. 당시에는 꼴찌만 면하자는 각오로 참가했다. 그러다 충북은 경기력이 향상되면서 경부역전 7연패, 한 번의 준우승, 다시 10연패를 이루는 놀라운 업적을 일궜다."

-충북도 시·군대항 역전마라톤 대회와는 인연이 깊어보이는데.
"충북시군대항역전마라톤 대회는 선수 때도 참가했지만 지도자 생활을 시작한 1984년부터 실무를 담당했다. 당시에는 1일경기(충주~청주)였다. 하지만 대회를 더 확대시켜야겠다는 판단이 들어 2010년 29회 대회부터는 단양에서 영동까지 충북 도내를 종주하는 3일 경기로 확대 개편시켰다. 대회가 훨씬 풍성해졌고 오늘날 주요 대회로 자리매김하게 됐다."

-38회를 맞은 충청일보 역전마라톤 대회 성과는 무엇이라고 보는가.
"충청일보 역전마라톤 대회가 갖는 의미는 당연히 선수 발굴·육성이다. 학생부와 일반부를 구분해 대회가 운영되기 때문에 특히 학생부의 발굴·육성에 비중이 크다. 이와함께 이 대회는 각 시·군청이 실업팀을 창단하게 되는 매개 역할을 했다는데서 의미가 크다. 대회를 통해 발굴 육성된 선수들은 전국체전이나 경부역전마라톤대회 참가해 좋은 성적을 거뒀다. 즉 충북 마라톤 선수 발굴의 산실이 된 것이다. 최근 우수한 성적을 보인 선수들이라면 올해 전국체전에서 우승한 제천시청의 최경선 선수, 5000m 금메달 한국전력 소속 이경호 선수, 1만m 금메달 한국전력 소속 신현수 선수들이 충청일보 역전마라톤 대회를 통해 발굴된 선수들이라고 할 수 있다."

-그동안 아쉬웠던 점과 앞으로 계획이 있다면.
"1984년 당시 업무를 처음 맡았을 때만해도 체계가 잡히지 않아 경기 운영이 매우 서툴렀다. 돌아보면 아쉬운 점이 한 두 가지가 아니다. 경기를 조직적으로 다시 운영하면서 이런 점이 개선됐다. 이제는 국내에서 아주 내로라하는 역전 마라톤으로 성장하게 됐다. 앞으로의 계획이라면 지도자로서 길이 얼마 남지 않았기 때문에 아시아대회나 올림픽, 세계선수권대회에서 메달 입상하는 충북 출신 선수가 많이 나오길 바란다. 이것이 지도자로서의마지막 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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