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한솔 홍익불교대학 철학교수

[수요단상] 윤한솔 홍익불교대학 철학교수

약거나 영악한 쪽은 제 욕심만 앞세우고 남의 욕망을 짓밟아 뭉개려고 덤빈다. 아마도 조선조의 양반보다 더 공자의 말꼬리를 붙들고 늘어진 계층은 없었을 것이다. 하나의 집단을 양반과 상것으로 갈라놓고 권리는 양반이 독점하고 의무는 모조리 상것에게 떠맡겼던 조선조의 유교이념의 통치는 공자의 말씀을 영악하게 이용했던 셈이다.

공자께서는 백성이 좇아 따르게 하기만 하면 되지 알게 할 것은 없다고 묘한 말을 남겼다. 어쩌자고 악용당할 빌미가 있는 이런 꼬투리를 “논어”에 실어 놓았을까? 아마도 조선조의 양반통치자들은 백성을 알게 하지 마라는 공자의 이 말을 가장 충실하게 옮긴 무리에 속할 것이다.

공자의 위와 같은 말을 물론 헤아려 변명할 수는 있을 것이다. 그러나 액면 그대로 듣자면 백성은 배부르게만 하고 어리석게 내버려두라는 말로 풀이 될 수밖에 없다. 세상을 다스리는 일을 어느 한편이 독점을 하게 되면 다스림을 당하는 편은 줄곧 당하기만 한다는 것을 공자께서 몰랐을 리는 없다. 군자가 다스림을 행해야 한다고 주장한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그 군자는 백성 속에서 나와야 한다는 말을 달아 두었더라면 공자의 말씀은 조선조의 양반 무리들로부터 말꼬리를 잡히지는 않았을는지 모른다.

사랑하며 올바르게 세상을 다스려라. 이것이 공자가 밝힌 덕치요 왕도가 아닌가! 세상을 덕치로 이끌어 가자면 백성이 어리석어서는 안 된다. 군자가 아무리 덕치를 베풀려 해도 백성이 어리석으면 덕치의 뿌리는 내릴 수 없는 것을 오늘날 백성들은 안다. 그래서 투표 철이 되면 한 표 행사를 제대로 못해 돼먹지 않은 인간들이 정치판을 망쳐왔다는 반성을 백성들은 이제 할 줄을 안다. 조선시대처럼 정치를 독점하는 시대는 영원히 가버리고 말았다. 왜냐하면 백성들이 깨어났기 때문이다.

오늘날의 군자는 백성을 따를 줄 알아야지 백성들로부터 따라오라고 하면 세상을 다스릴 만한 군자가 될 수 없다. 백성의 뜻을 따라 노를 저어야 살고 있는 세상을 편안히 항해해 줄 수 있는 능력을 간직한 사람이 오늘날의 군자가 된다. 물론 오늘날의 군자는 백성을 위해 남몰래 땀을 흘리며 설혹 백성이 몰라줘도 서러워하지 않아야 한다.

성인도 당신의 시대에 알맞은 말을 할 때가 있을 것이다. 백성을 모르게 하라는 공자의 말씀은 덕치의 왕도가 오로지 임금으로부터 나왔던 시절에는 먹혀들 수 있을는지 모른다. 그러나 덕치의 왕도가 이제는 백성의 깨어남에서부터 비롯되는 세상에선 군자는 백성이 바라는 덕치를 성실하고 믿을 수 있게 실천에 옮겨야 한다. 임금에게 충과 신을 바치는 군자는 이미 사라지고 백성에게 충과 신을 바치는 군자를 이제는 현자라고 부른다. 다양한 백성을 다스리는 일을 맡아야 하는 까닭에 군자는 어느 한 편의 외곬으로 빠져선 안 된다. 이러한 군자의 상을 오늘날 치자의 상으로 받아들여도 잘못일 리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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