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수 충북대학교 교수

 

[충청의창] 김성수 충북대학교 교수

아직은 추운 겨울, 대한민국의 2020국회의원선거 열기는 벌써 뜨겁다. 모두가 현 시대에서 무엇인가는 가진 자들의 전쟁이다. 국회의원이라는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또는 차지하고자 하는 자들의 격투장의 열기이다. 목소리 높이는 자들은 하나같이 자신 아닌 타인을 위하여 일하겠노라 울부짖는다. 과연 그들은 우리에게 무엇을 줄 수 있을까?

시대를 불문하고 공동적으로 나타나는 것은 대개의 위정자들이 입신양명이라는 틀을 벗어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개인의 영달과 번영은 잘난 자의 권리였고 위원직은 그들을 위하여 준비된 의자였다. 이러한 사회적 현상은 어쩌면 당연한 결과였는지 모른다. 살기 힘든 팍팍함 때문에 배고픔을 채우려는 욕구 외에는 아무것도 생각할 수 없었다면 너무 지나친 비약일까? 그래서 출세하여 입신양명을 통한 안락함을 추구하는 자가 대부분이었다. 그 결과로 우리는 모두를 위하여 일하는 자리에 앉은 사람들을 많이 볼 수 없었다. 이러한 사회적인 분위기에 휩쓸려 능력자는 입신양명을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대범함을 보였다.

결단코 염치와 부끄러움이 없다. 칼과 총을 든 자는 권력이 칼날과 총구에서 나온다고 했다고 하던가? 그래서 그들이 정말 국민을 위하여 무엇을 할 것이라고 말하는 것을 우리는 믿지 못하는 것이다. 결국 고생 끝에 낙이 온다는 믿음을 신앙처럼 갖고 사는 자이기에 신앙으로 얻은 자리에서 신처럼 누리고자 한다. 그 자리의 의미조차 또 그 역할조차 알지 못하는 자가 앉은 자리 주변에는 많은 사람이 불행하게 된다. 행복한 자가 단 하나만 홀로 존재한다. 결국에는 그로 인하여 많은 사람들이 피를 흘려야 한다. 그래서 민주주의는 피를 먹고 자란다고 하는가?

이러한 반면에, 봉사와 헌신의 의미의 깨달음에 정진하는 자는 결코 누리고자 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제가 되는 것은 권력의 속성이다. 권력은 마약과 같아서 한번 익숙해지기 시작하면 결코 벗어나기 쉽지 않다. 잡은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것이 권력의 속성이기에 더욱 더 그러하다. 그러기에 지도자만 깨어있으라고 요구하는 무지몽매한 국민은 이제 더 이상 존재 할 이유가 없다. 우리는 길거리에서 울부짖는 저들이 앉을 의자를 신중하게 선택하고 일 할 수 있데 당근과 채찍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 이제 더 이상 안전지대는 없다.

헌신과 봉사는 숭고하다. 우리가 원하는 바가 그러하다면, 분명 그런 인재를 얻을 수 있다. 아직 겨울이다. 분명 봄은 오는데, 그 봄은 우리를 위하여 박수를 칠 것인가, 자원도 인재도 척박한 충북이라는 지역의 입장에서는, 누리는 자가 아닌 봉사와 헌신의 지도자와 도민을 함께 만들어 나가는 것이 어느 때 보다도 중요하고 긴박하다. 겨울이 누리고자 머물러 있으면, 결코 봄은 올 수 없다. 노를 젓지 않는 배는 그저 흘러간다. 이제 더 이상 누리고자하는 자가 설 자리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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