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0년 3월 셋째 주

▲ 충청일보 1970년 3월 17일자 1면.

[충청일보 신홍균기자] 1970년의 셋째 주는 여전히 요원한 문제였던 국회 정상화를 제외하고는 캄보디아 군부 쿠데타, 학술대회에 소련 등 공산 측 입국 허가 등이 눈에 띈다.
 
△1970년 3월 17일

이날의 1면 머리로는 '國會召集(국회소집) 4月(월)로 延期(연기)' 제하의 기사가 올라있다.

부제가 '野(야) 登院展望(등원전망) 밝아져'이며 '共和黨(공화당)은 이달末(말)까지 國會正常化(국회정상화)를 爲(위)한 對野協商(대야협상)을 繼續(계속)하고 4月初(월초) 73回臨時國會(회임시국회)를 共和黨(공화당) 單獨(단독)으로 召集(소집)할 方針(방침)이다'라는 설명이다.
 
△1970년 3월 19일

이날은 3면 머리에는 '俗離山(속리산) 國立公園(국립공원) 지정' 기사가 자리하고 있다.

'16일 국토건설종합계획심의회는 忠北(충북) 報恩(보은)군 속리산의 총면적 60평방「키로미터」를 국립공원으로 개발할 것을 의결함으로서 전국에서 5번째로 속리산이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었다'고 요약돼 있다.
 
△1970년 3월 20일

1면 머리는 '國會對策協商問題(국회대책협상문제) 협의 … 라오스事態(사태) 國際情勢(국제정세)도' 제하의 기사가 차지하고 있다.

'政府(정부)와 與黨(여당)은 19日(일) 낮 청와대에서 정례 연석회의를 열고 ①國會(국회)대책 ②라오스 캄보디아 사태에 따른 국제정세 등을 검토했다'는 설명이다.

1863년 이래 프랑스 보호령이었던 캄보디아는 1953년 11월 9일 독립했다.

당시 시아누크 국왕은 민족주의적 성향으로, 프랑스로부터의 독립을 적극 추진해 캄보디아에서는 '건국의 아버지'로 추앙됐으나 1970년 3월 18일 우익 군부 쿠데타로 실각했다.
 
△1970년 3월 22일

'共産側代表(공산측대표)에 入國許可(입국허가)' 제하의 기사가 1면 머리에 올라있다.

'政府(정부)는 韓國(한국)이 주최하는 국제회의와 학술대회에 共産(공산)측대표들이 참석을 희망할 경우 한국 입국을 허가할  방침이다'라고 요약돼 있다.

이 방침은 앞서 1966년 4월 각의에서 확정됐다.

이날 3면은 '槐山(괴산) 道安(도안)에 怪疾(괴질)' 기사가 머리를 차지했다.

'충북 괴산군 도안면 송정리 2구 성내부락에서 괴질이 발생, 어린이 2명이 숨졌다'고 설명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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