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향숙 수필가

 

[백목련] 이향숙 수필가 

화초를 가꾸거나 책을 읽는다. 아침 시간이 여유가 있을 때이다. 커피가 당기지 않는 날은 다기茶器를 꺼내 놓는다. 차를 우려 마시며 과정을 사진 찍기도 한다. 시간 가는 줄 모르다가 부랴부랴 출근길을 나선다. 저녁때는 소박하기 그지없는 옷장을 연다. 고이 모셔두기만 하는 원피스들을 꺼낸다. 정리를 할 때마다 망설이다 버리지 못하고 다시 들여 놓았었다. 최근에 마련한 것도 있고 가끔 동료들과 나눔을 하여 모아두었다.

활동이 많은 일터에서는 입기가 불편하다. 그러다보니 아끼는 것이지만 대부분이 소장용이다. 입지도 않으면서 자리만 차지한다. 의류수거함에 넣으면 필요한 사람들에게 가겠으나 생각처럼 쉽지가 않다. TV에서 비우고 사는 삶에 대한 프로그램도 방영되어 볼 때마다 마음을 다잡지만 물욕이 강해서 일까 결국 버리지 못한다. 그중 눈에 들어오는 것을 한 벌 꺼내어 입어 본다. 마법처럼 거울에 비친 모습이 그런대로 괜찮아 보인다. 가족들과 외식을 할 때도 용기를 낸다. 자주 입지 않아서 멋쩍지만 자연스러운 척 한다. 친정에 갈 땐 가장 아끼는 것으로 고른다. 어머니에게 예쁘고 행복한 모습만 보이고 싶어서 이다.

조각난 천을 재봉틀로 박거나 손바느질을 하여 입혀주시던 ‘간단꼬’가 유년기의 입성 중 유독 기억에 남았다. 초등학교에 들어가서 치맛단이 아래로 갈수록 넓고 허리는 잘록하며 뒤에 리본으로 묶는 원피스가 유행했었다. 하늘하늘한 천에 잔잔한 꽃무늬가 아직도 눈에 선하다. 그때와 비슷한 것을 골라 입어 본다. 아무도 보아줄리 없지만 자아도취에 빠져 빙그르르 돌아본다. 금세 얼굴이 복숭아 빛이 난다. 한때는 무채색을 즐겨 입었었지만 여러 색상과 디자인을 거쳐 다시금 제자리로 돌아온 기분이다. 사실 이런 뒤스럭을 떨게 된 것은 문득 세월의 무상함을 느껴서 이다. 어찌나 빠른지 막을 수도, 잡을 수도 없어 허둥댄다. 중년이 되면서 체형의 변화로 다시는 입어 볼 수 없을 것 같은 아쉬움 때문이기도 하다. 어지러운 세상에 겨우 이런 것으로 소일거리를 하는가 싶지만 삶이란 것이 거창하거나 인류를 위해 무언가를 해 내야만 제 몫을 다하는 것은 아니다. 타인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다면 나를 위한 작은 행복을 찾는 행위도 필요하다.

가끔 일터에도 수줍은 변신을 한 채 출근을 한다. 하루 종일 행동이 조심스럽지만 일에만 매진했던 삶을 조금은 인정받는 기분이 든다. 다행히 동료들도 앞서 지나갔거나 비슷한 길을 걷는 이들이기에 서로 이해하고 응원해 준다. 어찌 보면 옷 한 벌로 추억을 들여다보고 젊음을 찾아 볼 수 있게 되었다. 요즘, 지구촌은 전염병으로 인한 절체절명絶體絶命의 위기에 처해있다. 밖의 활동보다는 집안에서 할 수 있는 놀이를 지향한다. 혼자의 시간을 잘 다를 줄 안다는 것은 허투로 시간을 허비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꼭 무엇을 해야 하는 것이 아닌 잠시 창밖 바람의 움직임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출발점이 된다. 소박하지만 내가 좋아 하는 것으로 시간을 보내며 만족하는 것이 대세다. 나도 그중에 한 사람이 되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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