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애 수필가

 

[월요일 아침에] 내가 나에게 말을 걸고 싶은 날에 어디론가 떠나고 싶어진다. 나에게 내가 하고 싶은 말들이 많은 날에도 어디론가 떠나고 싶어진다. 나와 함께 내가 생각에 깊이 빠져보고 싶은 날에 주섬주섬 가방을 챙겨서 여행을 떠난다. 무거운 마음의 짐 보따리를 들고 떠나면서 돌아오는 길에는 가벼운 몸과 마음으로 돌아올 수 있기를 기대하면서 떠난다. 비행기 표를 예약하는 날부터 나의 여행은 시작이 되었다. 떠나기 전 며칠 전 부터 나는 이미 낯선 곳 낯선 시간 속에서의 낯선 나를 마주하면서 가볍게 설렌다.

이른 시간에 출발하는 비행기 표를 샀다. 가능 한이면 신 새벽에 떠나고 싶었다. 어차피 여행은 미지의 세상과 시간으로의 출발이기 때문이다. 내 여행 가방의 무게를 가늠하지 못하는 듯 번쩍 들어주던 배웅.  신 새벽 아침 공기만큼이나 건강한 미소를 안주머니에 깊이 간직한 채 하늘 길에 올랐다. 작은 창밖으로 미명의 아침을 맞이한다. 잠시 눈을 감으니 마음이 새털처럼 가벼워진다. 돌아오는 길에도 나는 지금처럼 마음이 가벼울 수 있을까하고 생각하는 동안에 어느덧 시야 아래로 바다가 보인다. 이른 아침 공항으로 마중을 나와 주신 k선생님과 반갑게 악수를 했다. 낯선 곳에서 누군가의 따듯한 마중은 고맙고 행복해졌다. 나도 누군가에게 이렇게 따듯한 사람일수 있을까하고 잠시 생각했다. 

바닷가 해안로를 따라서 무작정 달린다. 마음이 넉넉한 사람의 가슴처럼 무조건 다 포용해줄 것 같은 넓고 푸른 바다가 넘실댄다. 이 바다를 보려고 달려왔구나! 내게 있어서 여행은 나 자신을 돌아보고 나와 함께했던 사람들을 생각하고 가족들을 생각하며 나와 함께하는 모든 인연들에 대해 감사하는 시간이다. 또한 이렇게 살아있음에 감사하고 마음껏 걸어보고 이토록 맑은 공기를 가슴 깊숙한 곳까지 들이킬 수 있는 건강함과 행복감에 고마워하는 시간이다. 바다를 하염없이 바라보면서 나도 누군가에게 넓은 가슴을 가진 사람이었나 하고 생각을 해보았다. 

협재 바닷가 찻집에서 가방에 넣어간 하루키의 노르웨이 숲을 읽었다. 조곤조곤 내게 말을 걸어온다. 어깨에 힘을 빼고 사는 사람과 편하게 대화를 나누는듯한 그의 글은 여행길에 만난 좋은 사람 같았다. 흐린 오후에 고즈넉한 사려니 숲길을 걸었다. 한번도 걸어보지 못한 이 길을 걸으면서 함께 이 길을 걷고 싶은 사람들을 떠올려보았다. 나를 스쳐간 사람들은 나와 무슨 인연이 있었던 걸까! 하고 생각을 해본다. 나를 아프게도 행복하게도 했던 사람들은 지금은 어떤 모습들로 살아가고 있을까, 내가 이제는 바람처럼 다 잊어버렸다는 것을 알고는 있을까! 이런저런 인연들을 곱씹어본다.

모슬포 항에서 낙조를 만났다. 마지막 사랑처럼 불타는 노을이 온 바다를 붉게 물들여간다. 너를 보려고 너를 만나려고 먼 길 먼 시간을 달려왔나 보다. 파도도 잠시 고요해진다. 어둠이 내리고 다시 올수 없는 시간 속으로 사라져갔다. 지나간 것은 지나간 대로 묻어두고 살면서 하나씩 꺼내어 보는 것도 여행길의 묘미이다. 내가 나에게 소홀해지고 나를 둘러싼 인연들에게 무심해 질 때에 나는 또 떠나게 될 것이다. 돌아가는 길  나의 무거운 짐들은 결국 하나도 덜어내질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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