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펜스룰'이라는 단어가 있다.
마이크 펜스 미국 부통령이 하원의원이던 2002년 인터뷰에서 "아내를 제외한 여성과 단둘이 식사를 하지 않고, 아내 없이는 술자리에 가지 않는다"고 밝힌 데서 유래했다.
지난 10일 숨진 채 발견된 박원순 서울시장이 최근 전직 비서로부터 성추행 혐의로 고소를 당했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온라인을 중심으로 이 '펜스룰'을 지지하는 의견들이 다시 부상 중이다. 펜스룰은 2018년 국내에서 '미투'(#Metoo, 나도 당했다) 운동이 활발히 진행되자 이에 대한 반작용으로 등장했다.
안희정 전 충남지사, 오거돈 전 부산시장 등의 성추문이 불거졌을 때도 어김없이 거론됐다.
미투 운동이 한창이던 2018년 4월에는 채용·고용 과정에서 성별에 의해 불이익이 발생하는 상황을 막기 위한 내용을 담은 일명 '펜스룰 방지법'이 국회에서 발의됐으나 입법되지 못 한 채 폐기됐다.
펜스룰 지지 의견은 "안희정과 박원순의 공통점은 여자 비서다. 여성의 일관된 주장이 진실이 되는 더러운 세상에서는 펜스룰만이 답"이라고 요약된다. 이와 연계해 아예 "여성 비서를 고용하지 말자"는 취지의 글까지 올라오고 있다.
"굳이 여비서 쓸 필요도 없는데 이참에 말 나올 일 없게 남비서로 다 바꿨으면 좋겠다", "만에 하나 잘못될 수 있으니 직속 비서로는 남자를 쓰는 게 더 낫겠구나 싶다"는 식이다.
젠더 문제 연구자들은 이런 현상이 성폭력 원인을 피해자에게 돌리는 전형적 방식이며 여성의 사회 진출을 막고 유리 천장을 공고히 만드는 논리라고 비판한다.
윤김지영 건국대 몸문화연구소 교수는 12일 연합뉴스에 "펜스룰의 전제는 권력 구조의 최정점을 당연히 남성이 차지해야 한다는 것"이라며 "결국 여자가 문제이기 때문에 여자를 공적 영역에서 추방해버리면 이런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는 이야기"라고 말했다.
홍성수 숙명여대 법학과 교수는 "성별과 관계 없이 모두가 평등하게 일할 수 있는 여건을 어떻게 만들지를 고민해야지, 그렇게 하기 힘들다는 이유로 여성과 무작정 거리를 두려고 하는 것은 그 자체로 차별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과연 그렇기만 할까.
최근 법원의 성범죄 관련 판결을 보면 '피해자의 일관된 진술'을 강조한다.
극단적인 예가 될 수 있으나 성폭력을 당했다고 주장하는 여성이 실제로는 가해자로 지목된 남성에게 악감정을 품고 무고하기 위해 작정한 뒤 정황을 그럴 듯하게 조작해 계속 똑같이 논리적으로 주장한다면, 그래서 죄 없는 남성이 형을 선고 받고 수감된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사람이 붐비는 장소를 남성이 지나가다가 여성의 몸에 우연히 손이 닿았는데 거기에 불쾌함을 느낀 여성이 성추행 현행범이라고 계속 주장하면, 억울한 남성이 아니라고 계속 말해도 거짓으로 일관한다며 법원이 유죄를 선고한다면 그건 또 어떻게 할 것인가.
물론 평등한 기회는 누구에게나, 남성에게든 여성에게든 주어져야 한다.
하지만 상기한 상황 같은 일이 일어나지 않는다고 누가 장담할 수 있는가.
이 또한 '딜레마'다. 결국 답은 '성숙한 젠더 의식'일까. 정말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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