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한솔 홍익불교대학 철학교수

[수요단상] 윤한솔  홍익불교대학 철학교수

조선조의 세 번째 임금이었던 태종이 임금의 자리에 오르는데 우여곡절이 많았다. 왕자들이 많다보면 임금의 자리는 하나뿐이므로 왕자들은 은근히 군침을 서로 흘리게 마련이다. 그러면 자연히 군침을 흠뻑 흘리게 뜸을 들여 주고 꾀를 부리게 하는 무리가 생겨나는 법이다. 권력이란 고깃덩이 같아서 개미떼처럼 측근이 생기게 된다. 못할 짓을 마다않고 임금의 자리에 오른 태종에게 측근이 없을 수가 없었다.

태종의 측근 중에 이숙번이란 자가 있었다. 태종이 등극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맡아했던 이숙번은 오만방자하고 안하무인이었다. 말하자면 그는 나는 새도 떨어뜨리는 막후실력자 노릇을 남김없이 하고 있었다. 궁궐에 나와서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제 집에서 걸림 없이 일을 마음대로 보았다. 임금이 불러도 나오지 않았고 요직에 사람을 등용할 때도 쪽지 한 장을 써서 궁궐로 보내면 즉각 기용이 되었다니 이숙번의 집의 문턱은 날마다 닳아빠질 정도였다.

권력을 이쯤 휘둘러댈 수 있었던 이숙번은 세상이 제 손 안에 있는 것처럼 생각했다. 이숙번이 돈의문 근처에 엄청난 집을 지어 놓고 갖은 호사를 부리고 누렸다. 서울 장안의 미색 기생은 날마다 불려가 노리개 노릇을 해야 했다. 역사는 밤에 이루어지고 그 밤 자리는 여자의 알몸들이 뒹군다는 것은 변함이 없다. 언제나 권력은 여색을 탐하고 덕(德)을 무서워한다. 그래서 권력은 사람을 잡아먹는 호랑이보다 더 무섭다고 백성들은 두려워한다.

돈의문은 서울 안팎의 수많은 사람들과 우마차, 그리고 사람을 태운 말들이 끊임없이 오고가는 커다란 성문이었다. 사람들의 시끌대는 소리와 말발굽 소리 등등으로 시끄러워 잠을 잘 수 없으니 돈의문을 막아 달라고 이숙번은 임금에게 간했던 모양이다. 그래서 돈의문은 막혀지고 오고가는 사람들은 먼 길을 돌아서 다녀야했다. 제 한 몸 편하자고 만인이 다니는 길을 막고 문을 막는 짓보다 더한 부덕은 없을 것이다. 날마다 산해진미를 차려놓고 여색을 탐하며 온갖 호사를 다 누렸던 같은 무리들은 언제 어디나 있는 모양이다.

돈의문을 막고 조용해서 편하게 잠을 잔 이숙번은 남을 편하게 할 줄을 조금도 몰랐다. 남을 편하게 해주면 그것이 덕이다. 부덕한 인간은 천벌을 받는다고 하지 않았던가. 결국 이숙번은 귀양살이를 갔고 돈의문은 트이게 되었다. 막혔던 돈의문은 부덕이었고 트인 돈의문은 덕(德)인 셈이다. 그래서 만 사람의 분노를 범하기는 쉽고 한 사람의 욕망은 이루어지기 어려운 법이다. 막강한 권력을 휘둘렀던 대통령들이 줄줄이 감옥행 또한 이와 다르지 않을 것이다. 하늘은 역시 부덕한 자를 벌하나 보다. 이것이 하늘의 이치인 것을‥‥.

나를 아는 자 남을 원망치 않고 운명을 아는 자 하늘을 원망치 않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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