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용주 선문대 교수

[세상을보며]  안용주 선문대 교수

당신 행적에 가슴 졸이는 가족 이야기가 온라인을 떠다닐 때부터 불안감에 휩싸였습니다. 0시가 넘어 이미 레테의 강을 건너신 당신의 주검이 휴대전화를 울릴 때 무작정 병원으로 달려갔습니다. 들어서는 엠블런스마다 벌떼처럼 달려들어 플래시를 터뜨리는 기자들 등 너머로 짙은 어둠과 죽음의 그림자를 멍하니 바라보았습니다.

요 며칠 당신을 물어뜯는 소리에 잠시 귀를 닫았습니다. 닫은 손가락을 비집고 들어오는 소리 가운데에는 살아생전에 당신이 만들어 놓은 터전에서 함께 외쳐대던 목소리도 있더이다.

나는 당신을 잘 모릅니다. 스쳐 지나가는 인연정도였지만 30대에 자신의 전재산을 팔아 ‘더 나은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시민의 역사의식을 높여야 한다’며 실천적 역사연구를 고민하고 있던 사람들에게 연구소 건물을 사주고 책을 기증했다는 기사를 읽었습니다.

시민의식이 곧 국가발전의 토대이며 개인 행복의 시발점이어야 한다는 당신의 철학은 ‘참여연대’설립을 주도하여 권력기관을 감시하고, 재벌개혁을 위한 소액주주운동, 부적격 정치인에 대한 낙선운동, 결식제로운동 등 국민과 개인의 삶에 깊숙이 자리잡은 사회악을 근절하는 토대를 제공했습니다. 더 나은 삶의 동반자가 되기 위해 아름다운 재단, 아름다운 가게, 희망제작소 등은 대한민국이 국민을 두려워하고, 국민의 정부가 되게 하기 위한 당신의 숨결이었습니다.

사람은 진심으로 모순덩어리입니다. 어제는 당신을 통해 세상을 보려했지만 오늘은 당신을 밟아 나를 세우려고 합니다. 정승 집 개가 죽으면 문상객이 문전성시를 이루지만 정작 정승이 죽은 자리에는 사람이 없다는 옛말이 떠오릅니다. 망자가 된 벗의 진정한 친구를 나는 오늘 알았습니다.

그렇습니다. 나 또한 절에 가서는 석가모니를 찬미하고, 때로는 하나님을 찬양하는 그 입술로 태연하게 거짓말을 합니다. 사람을 칭찬하던 그 혀로 누군가를 저주하기도 합니다. 사람의 마음은 사랑과 증오를 함께 가지고 있는 유일한 속성입니다.

‘성실한 사람에게도 얼마나 많은 가식이 있으며, 고결한 사람에게도 얼마나 많은 비열함이 있고, 불량한 사람에게도 얼마나 많은 선량함이 있는지 몰랐다’며, ‘인간은 신이 아니기에 모두 복합적이다’는 서머셋 몸의 글을 인용합니다.

성서에는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고,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너희의 종이 되어야 하리라.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다.’는 글귀가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당신은 자신이 누릴 수 있는 권리와 부릴 수 있는 권력을 마지막까지 내려 놓을 줄 아는 가난한 사람의 벗이었습니다.

대한민국의 심장인 수도 서울의 최장기 시장으로 8년 8개월을 일해 온 동안 당신의 삶은 가난 그 자체였습니다. 역대 서울시장 가운데 유일하게 시장재직 내내 순재산이 마이너스였고, 임기동안 당신의 빚은 오히려 늘기만 하여 6억9천만원의 빚을 남긴 무능한 가장이요 청렴한 국민의 대변자였습니다.

사랑합니다. 더 많이 사랑하지 못했음에 마음이 미어집니다. 이제 삶의 처절한 질곡에서 벗어나 영면하시길 간절히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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