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김종호 호서대 교수·법학박사

정의와 상식이 부정되어버린 현실 대한민국의 몰락을 구제하고 정의가 지배하는 국가를 세우기 위해서는 누가 다음 국가지도자가 되어야 할 것인지 고민해 봐야 한다. 희랍(希臘)의 철인 플라톤은 힘으로서의 국가, 물질로서의 국가가 아니라 정의의 실현자로서의 정신적인 국가를 꿈꾸었다. 그에게 물질적 번영과 같은 것은 국가의 목적이 아니었다.

플라톤은 페리클레스와 같은 아테나이의 저명한 정치가에 대해서도 "그가 강력한 국가를 구축하는데 선거를 치르며, 다수의 항만을 축조하고, 외국에서 물자를 수입하였으나 정의와 욕망의 절제가 존재할 여지를 없애버렸다. 그러므로 지금까지 아테나이에는 좋은 정치가는 한 사람도 없었다"고 말했다. 페르시아 전쟁의 영웅도, 아테나이 해상 패권의 창설자도 플라톤에게는 뛰어난 정치가가 아니었다. 당대에 물질적 풍요나 군사력은 이전보다 증대되었지만, 국가에 정의와 도의(道義)가 사라졌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는 상식과 정의가 실종된 시대에 살고 있다. 위선과 내로남불이 판치며 사람들은 편이 갈려 증오하고 있다. 나는 "우리들 중 어느 누구도 우리 자신만을 위해 태어난 사람은 없다. 우리의 각자의 존재는 국가에 봉사하는 한에 있어서 삶의 의의가 있다"고 말하고 싶다. 정치인도 정치도 자신의 논리의 유희를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선한 나라를 구체화할 수 있어야 존재의의가 있다.

우리가 꿈꾸는 이상국가는 결코 신비로운 나라가 아니라 이성의 눈에 의해 제시되는 합리적인 상식이 통하는 국가이다. 그러므로 국가의 최고지도자는 국가 안에서 정의를 실현하는 길을 찾아야 한다. 그는 상식을 갖고 정의를 실천할 열정을 가져야 한다. 정의로운 국가의 실현은 인간의 구제이며, 인간에 대한 애정이다. 다음 대통령은 인간애와 인간구제를 정치의 궁극적 목적으로 하는 사랑의 정치인이자 인도주의자가 뽑혀야 한다.

현재 대한민국은 결코 국가가 선(善)의 이데아를 실현하고 있다고는 평가할 수 없다. 기회는 불평등하고, 과정은 불공정하며, 결과는 정의롭지 못한 대통령 취임사의 정반대의 나라로 전락하였다. 하지만 우리는 정의를 바로 세우겠다는 야권 후보의 등장으로 정권교체의 희망을 갖게 되었다. 그러니 이번 대선은 위선의 국가를 바꾸고 선의 이데아를 실현하는 올바른 국가를 지향해야 한다. 대선 과정은 그의 말대로 정의를 세우는 다짐을 하는 잔치여야 한다. 그래야 번영도 있고 젊은이의 희망도 살아난다.

국가는 정의의 실현의 장이며, 정의는 국가의 지주이다. 현재 대한민국에서는 부정한 것이 번성하고 올바른 것이 고난을 당하고 있다. 대장동 사태가 그것이다. 가장 부정한 일을 행하면서, 마치 옳은 일을 행하고 있는 것처럼 선전하는 후보의 도덕성은 오로지 눈먼 청맹과니들에게만 사랑받고 있다.

현재 집권세력을 보면 누구나 고고한 삶을 살면서 스스로 안락을 구하는 것을 포기하고 대신 국가를 구하고 국민을 구해야 한다고 결심하지 않을 수 없다. 이제 올바른 지도자 선택이 필요하다. 이상적인 국가에서는 올바른 것이 행복이며, 올바르지 않은 것은 불행이다. 현실의 대한민국은 성실하고 올바른 자가 괴로워하고, 게으른 자가 행복한 나라가 되었다. 공짜 돈이 펑펑 쏟아진 나라가 되었다. 검찰권이 선택적으로 행사되는 나라가 되었다. 정치적 반대파를 괴롭히는 언론이 활개를 치는 상황이 되었다.

행복이란 신(神)에게도 통할만 한 올바른 생활을 함으로써 얻는 영혼의 열락이다. 위선과 허위와 내로남불로는 누구도 행복할 수 없다. 정치의 목적은 국민을 유덕하게 하고, 행복하게 하는 것이다. 국가의 목적은 부국강병의 실현이나, 국민의 물질적 욕망을 충족시키는 것만이 아니다. 집권당이 주는 잔돈 몇 푼의 물질적 충족이 국민을 행복하게 하는 것이 아니다.

국민을 행복하게 할 수 있는 것은 정의로운 국가 즉, 유덕한 국가라야 한다. 여기서 정의를 구축하는 것이 정치여야 한다. 그러면 정치인은 어떻게 국가를 정의롭게 하고 국민을 유덕하게 할 수 있는가? 그것은 국민들이 상식이 통하는 정의로운 후보자를 선택하면 되는 것이다. 이것이 희랍 철인의 가르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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