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광장] 유인순 한국커리어잡스 대표이사

치매는 국가가 관리한다. 아니다. 첫 문제부터 틀렸다. 정답은 ‘치매는 국가가 관리한다’이다. 친정어머니가 구십을 바라보자, 요양보호사 자격증이 필요할 듯하여 도전했다. 사회복지사 자격증이 있어서, 따로 공부하지 않아도 시험을 통과할 것이라 믿고 시험일이 다가오도록 책만 쌓아 놓고 있었다. 시험일을 확인하고 뒤늦게라도 책을 한번 훑어보려고 문제 풀이에 도전해 보니 첫 문제부터 아리송했다. 서둘러 시간을 확보했다. 집안일을 할 때나, 밭에서 풀을 뽑을 때도 헤드폰을 끼고 인터넷 방송 강의를 들었다. 시험을 보기 위한 공부였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많은 생각이 들었다.

지난날, 두 분 시부모님이 뇌출혈로 쓰러졌을 때, 그때만 해도 가족의 질병은 가족이 관리해야 했다. 환자 한 분이 집안에 생기면 누군가 하나는 온전히 환자를 보살피는 일을 해야만 했다. 형제자매가 많은 집도 대부분 맏이가 부모님 수발을 맡아 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 집안의 대소사를 맏며느리가 책임지고 시부모님을 모셔야 한다는 인식이 있었다. 더구나 외며느리인 필자는 하나부터 백까지 모든 수발을 책임져야 해서, 생리적인 현상을 해결하는 시간조차 빠듯했다. 자녀 양육과 병간호로 인해 과로가 쌓여, 스트레스로 위궤양을 앓았고, 우울증까지 겹쳐서 인생이 엉망이 되는 듯했다. 그 절망감을 혼자서 감내하기에는 까마득했었다.

골목이건 대로변이건 어디서나 쉽게 ‘재가복지센터’ ‘노인 주간보호센터’나 ‘노인 요양병원’등을 볼 수 있다. 요양보호사라는 직업이 꼭 필요한 시대가 되었다. 노인 장기 요양 초창기에는 요양보호사에 대한 인식이 정립되지 않아서 많은 문제가 있었다. 요양보호사를 마치 가사도우미로 생각하고 청소, 빨래 등 온갖 집안일을 시키는가 하면, 때로는 가족에 의해 성추행당하는 일까지 생겨서 기사화되기도 했다.

그러나 이제 요양보호사를 바라보는 시각이 변했다. ‘아줌마’라 부르지 말고 나라가 인정한 전문가 ‘요양보호사’로 부르라는 광고도 나오지 않는가. 서비스가 간절하게 필요한 사람으로서 요양보호사는 자신의 수족이나 마찬가지다. 자식들도 부양을 꺼리는데 생의 마지막 순간에 함께하는 요양보호사를 잘 만난다는 것, 또한 생의 축복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시험을 통과하기 위해, 전문가로서 꼭 알아야 하는 기출문제를 풀어가면서 또 하나를 결심한다. 마지막 소원이 있다면, 돈도 아니고 명예도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것은 바로 스스로 움직이다가 죽는 것이다. 더 오래 살든, 더 일찍 죽든 상관없다. 인명은 재천이라 하지 않는가. 그러나 마지막 순간을 어떻게 맞이할 것인가는 어느 정도 선택할 수 있다고 본다. 요양보호사로부터 아무리 존엄한 대우를 받으며 치료를 받는다해도, 스스로 움직이고, 먹고, 배설하기가 어렵다면 무슨 소용일까.

노인이 되면 병원 가까운 곳에 살아야 한다는 말 때문에 대학병원 근처에서 사는데, 그것이 꼭 옳다고 생각지 않게 되었다. 그냥 저녁 잘 먹고 다음 날 아침 잠에서 깨어나지 않을 마지막을 소망한다. ‘사전연명의료 의향서’ 작성 일정을 스마트폰에 적어 놓는다. 의중에 둔 지는 몇 년이 지났지만 바쁜 일상에 묻혀서 아직도 마음속에만 있던 일이었다.

‘65 무료 환승카드’,‘ 시니어 패스’,‘사랑의 장기기증 등록증,’ ‘우수 자원 봉사자증’을 지갑에서 꺼내 놓고 바라본다. 이제 ‘사전연명의료 의향서’를 채우면 지갑에 들어갈 것들이 제대로 갖추어지는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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