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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장장이 외길 40년… 전통방식 고집하는 '불꽃남자'[명인열전]증평 최용진씨
1974년부터 증평 장뜰시장서 대장간 운영
첫 기능보유자이자 향토무형문화재 9호
투철한 장인정신으로 유명세… 주문 쇄도
곽동윤 기자  |  focus5052@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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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4.10.16  16:4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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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용진씨는 대장간 부문에서 전국 최초로 기능보유자 인정을 받았다.

[증평=충청일보 곽동윤기자]증평대장간은 사라져가는 옛 풍경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장뜰시장의 명소다. 1974년 문을 연 이래 쇠 녹이는 화덕에 불 꺼진 날이 없다. 대장간 주인장 최용진 대장장은 쇠를 다루는 일이 제일 쉽다고 말하는 타고난 대장장이다.
열여섯 살 때 대장간 심부름꾼으로 일을 시작해 '남들이 호미 150개 만들 때 자신은 500개를 만들어내며' 망치질에 전념했다. 전국의 대장간들이 사라지고 대량생산 시스템으로 바뀔 때도 묵묵히 한자리를 지켰다. 대장간 부문에서 전국 최초의 기능보유자로 인정받았고, 충청북도 향토무형문화재 9호로 지정됐을 만큼 이 분야에서 으뜸으로 꼽히는 명인이다.

"아무리 더워도 쇠만 보면 힘이 나요. 하루 종일 망치질을 해도 팔 아픈 줄도 모르구요. 사람들이 찾아오면 더 신이 나지요. 일부러 우리 대장간을 보겠다고 찾아온 사람들인데 얼마나 고마워요. 그래서 잠깐 쉬다가도 구경 온 사람들이 있으면 하다못해 작은 호미 만드는 거라도 보여줘요. 잠깐 기다려봐요, 내가 얼마나 손이 빠른지 한번 보여줄게."
말을 마치기 무섭게 구석에서 쇠뭉치 하나를 꺼내 화덕에 넣어 달구고 망치질을 시작한다. 대장장이라기보다는 서당에서 글을 읽었을 듯한 고운 얼굴에 차분한 말씨, 여린 몸매의 주인장이 뚝딱뚝딱 몇 번의 망치질 끝에 낫과호미를 만들어내는데, 감탄이 절로 터진다.
"내가 일을 혼자 해도 워낙 손이 빠르니까 전국에서 주문이 와도 다 해내요”
열 평 남짓한 대장간 벽과 천장에 낫이며, 호미 같은 농사 도구부터 시작해 영화 소품으로 쓰이는 창들이 즐비하다. 빈 공간이 없을 정도로 꽉 들어찬 물건들은 주인장의 자랑이자 그의 인생이다. 대량생산 시스템으로 연장들을 척척 만들어내는 요즘이지만, 장인의 손끝에서 탄생한 물건을 사기 위해 일부러 찾아오는 이들도 적지 않다.
"이 대장간 물건 참 좋아요. 풀 베는 이 낫자루는 손에 착 감기고 잘 들어요. 청주에서 일부러 여기까지 온다니까."
낫 한 자루를 골라든 손님의 얼굴이 환하다. 신문지로 말아 싼 물건이지만 이런 것이 진짜 명품이다. 집에서 쓸 부엌칼이나 과도, 도끼나 낫, 호미 등을 축소해 만든 기념품 하나쯤 사가도 좋겠다.

   
▲ 벌겋게 달궈진 쇳덩이에 망치질을 하는 대장장이 최용진씨. '뚝딱뚝딱' 몇 번의 망치질 끝에 순식간에 낫,호미 등이 만들어진다.

▶ 최용진 장인은?

"화덕에 서면 더운 줄도 몰라. 평생 쇠랑 불만 붙들고 살았는걸"
최용진씨(65)는 지난 1995년 전국에서 처음으로 대장간 부문 기능전승자로 선정된 대장장이 장인이다.
그는 1600도가 넘는 화덕에서 적당히 달궈진 쇠를 귀신같이 잡아내 모루에 놓고 망치로 두드리고 구부린다.
불 조절을 잘못하거나 적당한 순간에 꺼내지 않으면 쇠가 산화돼 타버리기 때문이다. 이어 물에 담금질하면 쇳덩이들이 용도에 맞게 제 모습을 갖춰간다.
"매형에게 처음 일을 배울땐 겁도 많이 났지. 대장간에서 기술을 익히기 위해 얼마의 노력과 시간이 들지 알 수 없었거든"
최씨는 어려운 가정환경 때문에 16살부터 일을 시작했다. 그러던 중 최씨는 우연히 충주에서 매형에게 대장간 일을 배웠다.
그는 기술을 배워 지난 1974년 증평에서 본격적으로 대장간을 운영했다. 몇 년 뒤인 1980년대 초부터 대장간에도 기계가 들어오면서 사람이 하던 일을 기계가 대신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최씨는 40년째 모든 작업과정에 전통방식을 고집하고 있다.
"쇠·불·혼이 하나가 돼야 해. 쇠의 마음을 읽어 다루고, 불빛만 보고도 불을 이해하고, 혼을 다해야 작품이 나오는 거니까."
최고가 되겠다는 일념으로 40년을 해온 일이지만 최씨는 망치질 한 번에도 혼을 담아 내리친다.

   
▲ 대장간에 걸려있는 각종 농기구들.

▶ 대장장이 전수자 있나?
 

젊은 기능전수자들이 나타나지않고 있어 걱정이다. 최씨는 일이 바쁠때면 대장간에 다른 사람을 들일까 하는 생각도 해봤다.
하지만 '이곳에서 만들어지는 것들은 모두 내 손을 거쳐야 한다'는 그의 철학 때문에 홀로 대장간을 지키고 있다. 이런 최씨에게도 걱정은 있다. 대장간 작업 기술을 배우려는 사람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그는 "혼과 전통문화가 깃든 기술을 전수하는 데는 오랜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며 "'빨리빨리 문화'에 적응된 요즘 젊은이들에게 기술을 배우라고 권하기가 쉽지 않다"고 전했다.
특히 "농기계 중 사람손으로 만들어 사용해야하는 기구들이 많아 우리나라에 농촌이 존재하는한 대장장이는 없어 질수가없지만 배우는 과정이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기 때문에 젊은 전수자들이 없는것같다"며 아쉬움을 토로했다.
하지만 그는 "평생 함께한 뜨거운 불 앞에서 흘리는 땀 한 방울 한 방울이 내 삶과 행복의 증거"라며 웃음 짓는다.

   
▲ 지난 2007년 창작아이디어 상품 분야 동상 수상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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