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백년전 구전돼 온 들노래 처음으로 복원
지난 2003년 충북도 무형문화재 11호 지정
민속예술경연 최우수 등 각종 대회서 수상
"사라지는 손 모내기, 농요 계승·발전 노력"

 

  "야기도 허 하나~ 저하~저기도 ~ 또 하나"
 "여보시오~ 농부님네 이네말을 들어보소~"
 "여기도 허 하나~ 저하~저기도 ~ 또 하나"
 "듬성듬성 꽂더라도 삼배출짜리로 꽂아주오"

이 노래는 충북 진천군 덕산면 지역에서 모내기할 때 불렀던 진천 용몽리 농요(鎭川 龍夢里 農謠·충청북도 무형문화재 제11호)이다.


 진천 용몽리 농요 기능보유자 이정수씨(75·진천군 덕산면 석장로 140-13·사진)는 "사라지는 손 모내기와 전통 노동요가 아쉬워서 이를 계승·발전 시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몇백년 전부터 전해 내려오던 진천 용몽리 농요가 세상의 빛을 보게된 것은 1999년이다.


 당시 충북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임동철 교수가 덕산면 용몽리 일원에서 농사를 지을 때 부르던 들노래를 듣고 이씨에게 선소리를 시키면서 시작됐다.


 사십여년간 들노래에 익숙한 이씨가 선소리를 불렀고 임 교수가 그 가치를 인정하면서 용몽리 농요가 정리되기 시작했다.


 그해는 충북도 민속예술경연대회가 진천에서 개최되는 해였다.


 마침 출품작을 찾고 있던 진천군으로서는 용몽리 농요 복원이 반가운 소식이었고, 조용철씨를 단장으로 덕산 용몽리 농요단 창단리 속전속결로 이뤄졌다.


 이때 이씨가 십여 페이지 분량의 들노래를 정리하면서 진천 용몽리 농요의 첫 작품이 탄생하게 된다. 


 이렇게 정리된 농요를 바탕으로 '10회 충북민속예술경연대회'에 참가해 최우수상과 함께 박득천씨(작고)가 개인대상을 수상했다.


 이어 2000년 10월 41회 한국민속예술축제에서 우수상과 연기상 등 최근까지 충북도 및 전국대회에서 각종 단체상을 수상하고 있다.


 또 2000년 6월에 덕산면 인산리 들판에서 '1회 생거진천 들노래 현장 발표회'를 시작으로 현재까지 매년 5월 말~ 6월 초에 용몽리 논에서 시연회를 열고 있다.


 이를 계기로 2002년 조용철씨가 용몽리 농요를 충북도 무형문화재 지정을 신청했고, 이듬해 충북도 무형문화재 제11호 지정과 함께 이정수씨와 이광섭, 고(故) 박득천씨가 기능보유자가 됐다.


 이들은 충북에서는 가장 늦게 무형문화재가 됐지만 어려서부터 배워온 농요의 복원을 기뻐하고 있다.


 이씨는 "용몽리 농요는 다른 지역과 달리 온전한 논농사 소리로 구성돼 있다"며 "풍년농사를 기원하기 위해 남녀로 구분해 줄다리기로 시작해 모찌는 소리, 모심는 소리, 논매는 소리, 논뜯는 소리 등 네 가지로 구분한다"고 설명했다.


 1940년 7월 진천군 덕산면 석장리에서 육남매 중 넷째로 태어난 이씨는 18세부터 농업에 종사했고, 이때부터 농요(들노래)를 배웠다.


 특정한 스승 없이 동네 어른들과 품앗이를 다니면서 소리를 하고, 선소리와 뒷소리를 다 깨쳤다.


 그는 4회 박팔계 선생 추모 국악경창대회(2001년) 최우수상과 4회 상주전국민요경창대회(2002년) 신인부 장려상을 수상하는 등 수차례 민속경연대회 등에 참가해 용몽리 농요를 알리고 있다.


 이씨는 현재 용몽리 농요 단장으로 농요단을 이끌고 있으며, 최춘일, 김용희, 박중수, 신종우, 정인순씨 등에게 농요를 전수하는 등 전수·계승하고 있다.

 

진천 용몽리 농요는?
 

 진천 용몽리 농요는 예로부터 진천군 덕산면 일대(대월·목골·옥골들)에서 논농사 때 부르던 전통농요로 원형이 잘 보존돼 있다.


 풍년농사를 기원하기 위해 남녀로 구분해 줄다리기를 시작으로 모 찌는 소리와 모심는 소리, 논 매는 소리, 논 뜯는 소리 등으로 구성돼 있다.


 특히 논농사의 과정에 따라 동작에 알맞게 구성돼 있어 농사일에 지친 농부들의 피로를 잊게 하고 흥을 돋우는 조상들의 지혜가 잘 담겨져 있다는 평을 듣고 있다.


 모찌는 소리는 모내기 전에 모판에서 모를 뽑아 단으로 묶으며 부르는 노래로 벼농사의 첫단계이기 때문에 가을 추수의 풍작을 기원하는 내용이 담겨 있다.


 작업을 원활하게 하기 위해 "뭉-치세-뭉-치세-어히야 이모판 뭉치세"를 선소리를 하면 뒷소리를 받는다.


 모심는 소리는 모판에서 쪄낸 모를 논에 옮겨 심으며 부르는 노래로, 선소리는 "야기도-허하나-에하-저기도-또하나 여기도 심드라고 삼백출자리로 심어주소/ 야-기도-허하나-에하-저기도 또-하나" 등이다.


 논은 보통 세 번을 매기 때문에 초벌, 두벌, 세벌에 따라 소리가 달랐으나 용몽리에서는 논매는 소리로 묶어 전승하고 있다.


 마지막 농요는 논뜯는 소리로 풍년과 효친의 마음을 담아 부르고 있다.


 이정수씨 등 기능보유자 3명이 선소리꾼으로 이들이 각 단계마다 돌아가며 하거나, 한사람이 메기면 전체가 후렴구를 받는 형식으로 불린다.
 

 

▶ 전수 활동은?
 

 진천 용몽리 농요의 전수는 2000년부터 시작됐다.


 전수는 기능보유자인 고(故) 박득천, 이광섭, 이정수씨가 맡았으며, 최춘일(72), 김용희(68), 박중수(52), 신종우(51), 정인순씨(62·여) 등 5명이 이수했다. 이들은 교본에 있는 모 찌는 소리와 모심는 소리, 논 매는 소리, 논 뜯는 소리, 청주아리랑, 농악 등으로 전수 받았다.


 최씨는 2005년 진천 용몽리 농요단원으로 가입했으며, 북, 징, 꽹과리, 장구 등을 고루 잘 다룬다.


 2002년부터 단원으로 활동하고 있는 김씨는 25세부터 농요를 배우기 시작했으며, 충북도내에서 양북을 칠 수 있는 유일한 인물이다.


 박씨와 신씨는 2002년 단원으로 가입해 농요를 배우기 시작했고 태평소를 잘 분다.


 유일한 여성 전수자인 정씨는 2005년에 단원으로 가입했으며, 꽹과리와 북, 장구를 잘 다룬다.


 지난해 11월에는 '진천 용몽리 농요' 전수관이 건립됐다.


 이 전수관은 8억 7000만원(도비 1억8000만원, 군비 6억9000만원)을 투입해 진천군 덕산면 용몽리 2172㎡에 지상 2층(건축 연면적 537㎡) 규모로 들어섰다. 1층은 대한노인회 덕산면분회로, 2층은 농요전수실과 사무실로 사용하고 있다.


 전수관이 들어서며 소중한 지역 유산인 진천 용몽리 농요의 체계적인 보존과 전승·계승에 힘을 보태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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