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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인열전]돌과 함께한 30년… 천년의 세월을 새기다석공예 박주부 작가
박하윤 기자  |  rose7777@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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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4.12.04  16:38: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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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숲의노래' 제작과정

[보령=충청일보 박하윤기자] 충남 보령시 하면 '바다', '대천해수욕장', '머드축제', '석탄박물관' 등 떠오르는 몇 가지가 있다.
 

그 중에서도 보령시 웅천지역의 '돌'을 빼놓을 수가 없다.
 

보령시 남포 오석은 국내뿐만 아니라 국외까지도 그 인기가 대단하다.
 

석공예예술을 세계와 공유하기 위해 보령시가 추진하고 있는 돌문화공원 사업.
 

이 사업에 한결같이 웅천의 석공예 길을 걸어온 이가 있다.
 

바로 한국석조각예술인협회 이사장을 맡고 있으면서 충청남도 미술대전 초대작가로 활동 중인 박주부 작가(55)다.

   
▲ 작품 옆에 서 있는 박주부 작가.

 

웅천돌문화공원 단장이기도 한 석공예 박주부작가는 한의사인 아버지와 감성이 따뜻한 어머니 사이에서 5형제 중 막내로 태어났다.
 

박 작가 형제들은 모두 현재 서양화, 한국화, 석공예 등 현업에서 예술 작품 활동 중에 있다.
 

5형제들의 예술성 깊은 감성은 어머니의 감성이 큰 영향을 끼쳤다고 한다.
 

박 작가는 어린 시절을 웅천읍 성동리 끝에 보령댐과 양각산이 함께 보이는 경관이 아름다운 곳에서 보냈다.
 

박 작가는 "동양화로 비유해 자연 속 여백의 미를 한껏 느낄 수 있는 경관을 보고 자랐다" 며 "초등학교 5학년 시절 늦가을에 마당을 쓸고 있는데, '가을은 낙엽이 있어야 제격이야, 깨끗이 쓸어두면 가을의 풍미를 느낄 수 없지 않니'라는 어머니의 말씀이 현재까지 예술적 감성에 기반이 됐다"고 말한다.
 

이렇듯 5형제 모두 예술을 할 수 있는 계기는 바로 어머니의 감성이 깊이 깃들어서 인 듯 보였다.
 

어렸을 적 만화가를 꿈꾸며 문화생으로 활동하던 그는 동양화를 하시던 둘째 형님이 스님이 된 영향을 받아 지난 1985년에 절에 들어가 2년간 사찰생활을 하기도 했다.
 

이후 박 작가는 "세상을 살면서 남을 속이지 않고, 살아있는 것을 죽이지 않으며, 불교적인 일을 하고 살아야 겠다"고 생각한 후 1987년도에 고향으로 돌아와 본격적으로 석공예 작업을 시작했다.
 

박 작가의 작품은 유독 물고기를 형상화한 작품들이 눈에 띈다.
 

이는 절에서 생활한 영향이 그의 작품에 많이 깃들여진 듯 보인다.
 

그는 "작업에 들어 갈 때면 깨달음의 형태는 어떤 것일까? 수행의 과정을 조각을 통해 대중들에게 메시지를 어떻게 전달 할 수 있을까?"를 생각한다고 작품의 의미를 말한다.
 

불교의 목탁이 물고기 모양을 형상화해 맑은 정신으로 수행하라는 뜻이 담겨 있듯 박 작가의 작품 또한 '깨달음의 노래' '숲의 노래'처럼 불교 상징성을 박작가의 생각과 혼합해 작품에 담아내 보였다.
 

충청남도 미술대전 대상, 중앙비엔날레, 미술세계 대상전 특선 등 여러 작품 초대전과 수상, 제작, 심사를 맡으며 현재까지 활동 중에 있지만, 예전엔 돌 값은 외상으로 치러도 출품료 5만 원이 없어 공모전에 참여하지 못했던 시절도 있었다.
 

그는 "그림작업하는 친구들은 공모전에 작품 들고 기차타고 가도 되지만, 석공예는 작품을 카크레인으로만 이동이 가능하기 때문에 예전엔 돈이 없어 특히 힘들었다"며 "고생하신 운전기사 아저씨께서 거꾸로 우리 밥을 사주셨다"는 힘들게 버텨온 석공예 이야기를 들려줬다.
 

박 작가는 지난해(2013년) 루마니아와 대한민국 미술문화교류전에 박주부작가 작품 또한 참여해 전시했다.
 

그는 "올해엔 한국에서 전시회가 열렸는데 열흘간 전시 중에 루마니아 작가들이 보령 돌문화공원에 다녀갔다"며"석공예를 통해 이틀간 국제 교류시간을 갖을 수 있는 시간이 됐다"며 석조각협회 회장 임기 중 뜻깊은 행사를 맡게 됨에 감사를 표했다.
 

또 "그 지역엔 바다가 없어 대천해수욕장을 보며 감탄해 우리 지역의 풍경까지 선물할 수 있는 즐거운 시간이 됐다"며 "내년을 또 계획하고 있다"고 기대했다.
 

   

▲ 웅천돌문화공원 전경.


△석공예란
 

석공예의 역사는 인류가 도구를 만들어 쓰기 시작하면서부터 비롯됐다.
 

그래서 인지 우리전통 문화재 중 70%가 돌이다.
 

그만큼 돌이 귀한데 비해 사람들은 너무 흔하게 보기 때문에 귀하다는 생각을 못한다.
 

돌이 아니였다면 우리 문화제를 많이 만나볼 수 없었을 것이다.
 

종이나 나무에 비해 돌은 천년이 흘러도 남아있다.
 

현재 석공예들이 많이 사라지고 부족한 부분을 중국에서 싸게 수입되고 있다.
 

이에 박작가는 "앞으로 천년 후에 후손들에게 조상들이 남긴 우리나라 석공예 작품은 2014년도에 중국에서 가져왔다"라는 기록뿐이 남지 않을까 걱정하고 있다.
 

그는 석조각예술인협회 단체를 만들어 전통 문화를 지켜나가고 있지만, 앞으로 대학에서 전공한 후배들이 우리나라의 전통기법을 지키고 개선해 전시, 발표하는 등 전통문화재 재연방법에 신경을 써야할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문제는 돈벌이가 되지 않아 전통을 지키지 못하고 석공예인들이 떠나고 있다는 데 있다.
 

박 작가는 "학생들이 모르는 경우가 대부분인 것 같은데 세계기능대회(기능올림픽)에 출전해 금메달을 목에 걸면 연금을 받고 작품 활동을 할 수 있다"며 "많은 후배들이 참여해 후원을 받고 작품 활동할 수 있는 후학들이 많이 있길 바란다"고 했다.

   
▲ 작품 'a song of dharma'

 
△박주부작가의 또 다른 꿈.
 

"아들이 한명 있어요" 하며 수줍은듯 웃는 박주부 작가.
 

모든 아버지와 아들 사이는 어색한 모습이 묻어 있는 것이 당연한 듯 박주부 작가 또한 아들 이야기에 어색해하며 입을 열었다.
 

문화경영인이 되고 싶은 아들과 미술관을 만들고 싶은 아버지.
 

"아들과 친해지기 위해 이번 겨울 제대 기념으로 어렸을 적 꿈이였던 시베리아 오지에 숨어있는 '바이칼 호수'에 가기로 했다"며 "외국작가들은 어떤 작품 활동을 하는지 예술가를 만나 문화경영인을 꿈꾸는 아들에게 그 나라의 문화를 배워올 수 있는 기회가 되길 바란다"며 아들과의 여행에 설레인 표정을 지었다.
 

모든 나라의 문화를 알고자 한다면 그 나라의 예술가들과의 교류를 통하면 된다는 박 작가.
 

우리나라 역시 대표문화인 석공예문화가 이어지길 기대하며 석조각협회에서도 학생장학금 후원과 후배양성에 힘쓰고 있다.
 

"관객들에게 예술 문화를 통해 마음의 힐링이 필요할 때 자연과 함께 어우러지는 시간을  갖을 수 있도록 하는 바램이 크다"는 박주부 작가.
 

다양한 작가들과 작품교환을 통해 미술관 준비 중인 박주부 작가의 작품 속 중량감의 따뜻한 이야기를 기대된다.
 

그의 꺼지지 않는 열정과 작품의 견고함에 박수를 보낸다.
 

   
▲ 돌문화공원 내부 박주부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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