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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인열전]나무결에 삶의 무늬를 새기다
박하윤 기자  |  rose7777@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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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4.12.18  20:0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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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지완 선생과 작품 반야심경.
   
▲ 작업중인 정지완 선생.

2남3녀 중 장남으로 책임감 남달라 <br>대학 졸업후 삶의 의미 찾고자 일본행 <br>좋은 글귀 담다보면 내면 아름다워져 <br>22년째 이웃에 재능나눔 솔선수범 <br>서예문자 특화시키는 것이 오랜 꿈 <Br>가족에 보답 위해 포기하지 않을 것
 

[보령=충청일보 박하윤 기자]시대에 걸맞는 글을 남기기 위해 노력하는 서각예술인 정지완씨(50).
 

서각은 여타 다른 예술에 비해 낮 설다.
 

어디에서 작품을 만나볼 수 있을까.

의문이 먼저 나오기도 한다.
 

22년동안 서각을 알리기 위해 외길 인생만을 살아왔다는 정 선생을 만나 서각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서각은 작품에 좋은 글귀를 담는다. 오랫동안 몰두해야하는 작업이다 보니 작품이 끝날 때쯤이면 자신 내면의 마음이 아름다워 지는 작업이다"라고 말하는 정지완 선생.
 

보령시 남포면 제석리에서 2남3녀 중 장남으로 태어난 정 선생은 농촌 시골마을에서 자랐지만 책임감 강하고 영석한 두뇌로 성균관대 행정학과를 졸업했다.
 

공직자 또는 직장인, 기업인이 될 줄 아셨던 부모의 기대는 저버린 채 대학졸업 후 자신의 삶의 타당성을 찾기 위해 돌연 일본 여행길에 오른다.
 

"재학시절 내내 문화예술 쪽에 관심이 많아 현장을 찾아다니며 간접교육의 끈을 놓지 않고 있었다" 며 "미래의 국가경쟁력은 문화에서 나온다 생각해 주체성을 찾고 미래의 타당성을 찾아 진로를 선택하고 싶었다"고 말하는 정 선생.
 

농사만 짓는 시골이었지만 아들의 자취를 초등학교 시절부터 모든 상장과 성적표를 내복박스에 고이고이 보관해 둔 부모님.
 

이를 보며 성장한 정 선생은. 잠재돼 있는 재능에 대한 많은 자심감과 주변인들의 격려가 어쩌면 정확한 논리를 추구하는 행정학과를 졸업했음에도 예술인의 외길인생을 선택하게 됐는지 모른다.
 

"예전에 붓글씨 대회에 나가면 먹 갈아서 시제 보고 옛 과거 시험 보듯 그랬어요. 얼마나 설레였는지 몰라요"
 

한글문화에 대한 자긍심이 유독 크다는 정 선생은 미술, 음악, 무용 등 모든 예술 중 서예문자를 특화 시키고 싶었다 말한다.
 

삶의 방향과 가치성을 다르게 정의하기로 한 정 선생의 서각인생이 시작된 것이다.
 

"자신을 쇠뇌시키기 시작 했어요. 돈 많이 벌어 잘 사는 것은 포기하기로... 영업논리는 버리고 대중들에게 서각과 가까워질 수 있는 방향성만 생각하기로 했다"며 "22년째 재능기부를 하고 있다"는 정 선생의 서각사랑.
 

서각을 알릴 기회가 생긴다면 어디든 달려가는 그의 모든 생각과 움직임을 들여다보면 그 이유는 오로지 서각이었다.
 

"서각을 위해 또 나의 성장을 위해 가족을 너무 희생시켰다"며 "짜장면 먹는 외식한번 못했다"는 외길인생을 함께한 가족들.
 

가족에게 강요 아닌 강요만 하게 돼 미안한 마음의 보답은 가고 있는 길에서 망가지지 않고 말한 것에 책임져 끝까지 가는 것이 그의 신념이었다.

 

▶ 정 선생이 말하는 서각의 의미
서각은 목판에 글씨를 파거나 돋을 새김해 작품을 만드는게 방법인데, 좋은 글귀를 오랜시간에 걸쳐 작업하기에 마음이 특히 아름다워진다.
 

예술은 자신 내면을 아름답게 만들고 좋아서 하는 일이며 주변에 아름다움을 나눌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오랫동안 정성들여 작업한 작품을 주변인들과 나누고 공유하는 기쁨을 느낄 수 있는 것이 문화의식이다.
 

글을 담는 작업을 통해 개인 삶의 방향성을  얼마나 가치있게 정하고 주체적인 삶을 살 것인지를 알고 서각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
 

자본논리 속 사회구조 안에서  제약이 많은 것에  문화예술또한 빠질 수 없다.

작품을 만들었지만 상품화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2012년부터 4명의 예술인이 모여 사회적기업을 고민해, 현재 정부지원금 받아 ㈜서각사랑을 운영하게 됐다. 서

각을 통한  한계단의 발전이 기대된다.

외형적으로 많은 수입창출을 하지는 못하지만 외지에서 벤치마케팅을 하러 많이 찾아온다.

힘들더라도 더 견뎌보면 선순환적으로 돌고돌아 의미있는 기회들이 생길 것이다.

좋아하는 일을 선택하면 80세까지 행복한 일을 하며 살 수 있다는 정 선생의 인생은 서각을 위해 자신과 자신의 문제로 앞으로도 전투할 것이다.

 

▶ 서각의 후학

 서각이 문화예술로 자리 잡게 하기위해 고민하고, 서각을 통해 후학들이 이 시대의 사회현상을 느낄 수 있는 작품으로 감동을 만들어 내고 있는 정 선생의 서각인생. 미술, 음악, 무용 등 다른 문화예술에 비해 서각은 대학교 과정에 전공 할 수 있는 학과가 없다.
 

정 선생은 "서각인은 글을 담아야 하는 작업이기에  특히 이론 공부가  많이 필요한데 비해 현재 전공대학이 없어 학력이 대부분 짧다"며 "어떻게 하면 학과목이 생겨 다른 문화예술처럼 자리잡을 수 있을지 가장 고민이라"말한다.
 

"조건 좋은 곳에선 어느 누구나 잘 할 수 있다"는 정 선생의 서각문화 알리기 운동은 고향인 문화의 불모지 농촌에서 가장 뜨거웠다.
 

"농촌은 문화 사각지대 인데 내가  할 수 있는 한 농사를 짓고 있는 주민들에게 강의를 할 것이다."
 

"50~60대는 사회적으로 문화를 빨리 받아 들이기 어려운데 문화의 힘이 그 생각을 바꿔주는  것을 느꼈다"고 그는 말한다.
 

"이 곳 시골에서도 서각을 통해 문화의 리더자로 성장해 가는 과정을 느끼고 있다"며 "주민들의 '한번 해 봅시다' 그리고 '선생님 고맙습니다'라는 말 한마디면 눈물 고이는 감동으로 전해져 온다"고 말하는 정 선생은 서각을 조용히 또 뜨겁게 전하고 있었다.
 

정 선생은 "함께 한 모든 사람들이 서각의 전문인이 되어 문화의식에 함께 할 수 있길 바란다"며 "늘상 나 자신에게 말한다. 내가 말한 것을 지키지 못하면 괴로우니 내 마음에 책임지기 위해 오늘도 서각 생각뿐이 하지 못한다"고 서각을 향한 열정을 보여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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