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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경 출향인사를 만나다]
(1) 임덕규 백소회 총무
폭넓은 인적 네트워크… 세대를 연결하는'국제 마당발'
이득수  |  leeds21@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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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5.02.05  19:1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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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 중구 다동에 있는 임 회장의 사무실은 온통 사진과 자료들로 둘러싸여 있다.

[서울=충청일보 이득수기자] 충청권 출신 명사들의 모임인 '백소회(百笑會)'를 이끌고 있는 임덕규(林德圭·79) 월간 '디플로머시(Diplomacy)' 회장은 각계에서 활약하고 있는 충청 인물들을 누구보다도 많이 알고 있는 사람이다. 그는 지난 1992년에 백소회를 설립하고 총무를 맡아 23년째 이끌어왔다. 백소회는 서산 마애불상에서 볼 수 있는 '백제의 미소'에서 따왔다. 임 회장 자신도 전두환 정권 때인 11대 국회의원으로 활동했고, 외교가·언론인으로서 큰 업적을 쌓아온 충청도가 배출한 인물이기도 하다. 임 회장은 한국 나이로 올해 팔십이다. 팔순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지금도 현역으로 뛰고 있다. 서울 중구 다동 삼덕빌딩 9층에 있는 월간 디플로머시 회장실에서 그를 만났다.  
 
임 회장은 충남 논산 출신이다. 스스로를 "어릴 때부터 계획적으로 인생을 살아온 사람"이라고 표현한다. "초등학교 4학년 때인 1948년에 제헌국회가 생긴다는 소식을 듣고 나도 국회의원이 돼 보겠다는 뜻을 품었다. 어린 마음에 국회의원이 되려면 법을 잘 알아야 하겠다는 생각에서 법학을 배우게 됐고, 또 사람을 많이 알아야 하겠다는 생각에서 시작해 조직을 평생 전공처럼 해왔다." 시골에서도 나름대로 합리적인 결론을 이끌어낸 소견도 기특하지만, 그것을 흔들림 없이 한 걸음 한 걸음 실행에 옮긴 정신을 높이 사야 할 것 같다.
 

   
▲ 임덕규 회장은 월간 디플로머시 발행인으로 전세계 500명의 각국 정상들과 함께 찍은 사진을 소개하고 있다.

◇임병직 외무장관 권유로 '디플로머시' 창간
임 회장은 1963년 독립운동가이며 대한민국 초대 외무장관을 지낸 소죽(小竹) 임병직(林炳稷·1893∼1976) 선생을 만남으로써 인생의 전기를 맞게 된다.
 

집안 어른이기도 한 임 선생은 미국에서 이승만 박사와 함께 대한민국임시정부 구미위원회에서 독립운동을 했고, 정부수립 후 1949년 외무장관이 됐다.
 

6·25 전쟁이 일어난 후 51년엔 주 UN대사로 나가 우리나라 건국외교 안보외교 재건외교를 이끈 인물이다.
 

"해방 직후 모스크바 3상회의에서 한국을 5년간 신탁통치하기로 결의하자 임 선생은 구미위원회 대표 자격으로 미국 뉴욕에서 UN회원국들을 움직여 47년 11월 14일 '한국의 문제는 한국민에게 맡긴다'는 결의안을 참석 43개국 만장일치로 이끌어냄으로써 한국에 대한 신탁통치를 저지시켰다. 또 주 UN대사로서 6·25후  한국을 전쟁의 폐허에서 재건한 UNKRA(UN 한국재건위원회) 설립을 주도한 분이기도 하다."
 

임 회장은 "임 장관이 대한민국의 독립과 안보를 위해 지대한 공헌을 한 인물이지만 제대로 역사적인 평가는 받지 못하고 있는 점이 안타깝다"고 말했다.
 

임 회장은 동국대 대학원생(법학과) 때인 1963년 9월 10일 오후 2시반에 UN대사를 마치고 귀국하는 임 장관을 김포공항으로 마중 나가 처음 만났다. 임 선생과 함께 지내면서 그는 철기 이범석 장군, 이갑성 옹, 윤치영 박사, 안호상 박사 등 독립운동가들을 많이 만나게 됐고 그들로부터 자연스럽게 투철한 나라사랑 정신을 몸으로 배웠다.
 

서강대에서 헌법학 강의를 하던 임 회장은 1970년 신아일보 장기봉 사장의 권유로 언론계에 발을 들여놓았다. 이후 동화통신에서 논설위원으로 일할 때인 1972년 임 선생으로부터 "영문 외교잡지를 만들어 우리나라의 주장을 세계 각국에 알린다면 국가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는 말씀을 들었다.
 

"아무 준비가 없었지만 자신을 돌보지 않고 애국하는 삶을 살아오신 선생의 말씀에 못하겠다는 말은 감히 할 수가 없었다. '네' 하고 대답부터 하고는 내가 갖고 있던 백색전화(사고팔 수 있는 전화)를 팔고, 집을 담보 잡혀 1975년에 창간호를 냈다. 올 8월이 40주년이다."
 

   
▲ 코피아난 전 유엔 사무총장(왼쪽)이 2006년 5월 서울에 왔을 때 임덕규 회장이 “반기문 사무총장을 후계자로 선택하면 위대한 지도자가 되실 것입니다”라고 권유하자 아난 총장이 폭소를 터뜨리고 있다.

◇반기문 UN사무총장과의 인연
최근 각종 여론조사에서 차기 대통령 지지도 1위를 달리며 '충청권 대망론'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반기문 UN사무총장과의 관계에서도 월간 디플로머시가 큰 역할을 했다. 반 총장과는 44년 동안 인연을 맺어왔다. 1971년 반 총장이 주 인도대사관에서 3등 서기관으로 초임 외교관 근무를 했는데 당시 임 회장은 한-인친선협회를 조직해 간사를 맡고 있 때여서 자연스레 만남이 시작됐다.
 

임 회장은 막후에서 반 총장을 노무현 정부 외무장관으로 추천한 주역 중 한 사람이다. 반 총장은 2004년 1월 장관이 된 직후 임 회장을 만났고, 이 자리에서 임 회장은 반 총장에게 UN사무총장에 도전할 것을 권유했다.
 

"서울에 허물없이 호형호제할 정도로 친하게 지내는 100명 가까운 각국 대사들이 있었고, 외국의 왕, 수상, 대통령 등 500여명 이상 알고 있었다.  선거가 어떻게 치러지는지 잘 알기 때문에 나도 모르게 자신있게 얘기한 것이다."
 

임 회장은 특유의 조직력을 발휘하며 '반기문 총장 만들기'를 총 지휘했다. 반사모(반기문 사랑 모임)를 만들어 이를 기반으로 지지를 확산시켜 나갔다. 반 총장의 당선은 정부 차원에서의 지원도 작용했지만, 임 회장의 디플로머시를 통한 네트워크도 크게 기여했음이 틀림없다. 임 회장은  "세계의 대통령을 지낸 분으로서 더 큰 일을 해야 한다"며 반 총장의 대선 참여설을 부정하고 있지만 여건에 변화가 올 경우 그의 조직력이 다시 한번 위력을 발휘할 가능성은 아직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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