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일보 서한솔기자] 과거 역사 속 오늘, 충청일보 신문을 살펴보는 코너입니다. 과거 이슈뉴스를 선정해 브리핑해드립니다.

 

 

서해훼리호 참사 23주기 그리고 노란 깃발

<1993년 10월 11일> 애타는 生死확인 가족오열

서해훼리호침몰사고 道民 50여명 탑승 惨變

▶1993년 10월 11일자 '애타는 生死확인 가족오열'

26년 전 오늘(1993년 10월10일), 전북 부안군 위도면에서 서해 훼리호가 출발 30분 만에 침몰했습니다.

2014년 세월호가 그랬던 것처럼 물살이 거센 해역에서 급히 방향을 바꾸다 일어난 ‘인재’였습니다. 정원을 141명 초과 한데다 무자격 업체에서 복원력 검사를 받아 안전을 담보할 수 없는 상태였습니다.

특히 휴일을 맞아 낚시를 즐기러 온 상당수의 동호인들 가운데 청주시민도 50여명 가량 탑승했던 것으로 밝혀져 안타까움을 더했는데요.

당시 훼리호참사를 보도한 충청일보는 “바다를 그리워한 내륙도민이 만주의 바다에서 뜻하지 않은 재난을 당했다”라고 서술했습니다. 또한 “특히 청주시민 탑승객가족들이 현장에 도착, 생사여부를 확인하는 과정에서 희비가 엇갈리기도 하면서 병원주변은 아비규환을 방불케 했다”며 참사의 실상을 전했습니다.

서해 훼리호 사고 후 해경은 승선자 수를 140여 명에서 221명으로 번복했지만, 실제로는 이보다 많은 362명이 타고 있었습니다.

이 사고로 살아남은 생존자수는 70명뿐이었는데요. 당시 70명의 생존자 중 한사람이었던 충북대 수의학과 교수는 불과 몇 시간 전까지도 함께 있던 동료들을 순식간에 잃은 슬픔에 말을 잇지 못했습니다. 생존자와 사망자 가족들 모두에게 씻을 수 없는 아픔을 남긴 사고였습니다.

훼리호 사고가 발생한 지 20년이 지나고 우리는 또다시 세월호 참사를 목도했습니다. 무리한 운항과 과적, 정부의 잘못된 발표, 인명구조 실패로 인해 292명이 목숨을 잃으며 과저 지적된 문제들이 그대로 되풀이됐습니다. 세월이 흘렀지만 어떤 것도 개선되지 않았죠. 여전히 그 날의 진실규명을 외치는 노란 깃발만이 거리 곳곳에 휘날리고 있을 뿐입니다.

▶1993년 10월 11일자 '惡夢의 주말·휴일…넋잃고 침통·망연자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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