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주서 제작소 운영… 명맥 이어와
국내 최초 현대인 체형 맞춘 활 제작
각종 대회에도 나가 수상 경력 다양
인생 돌아보는 음반 10월 출시 예정

[충청일보 신홍균기자] 일본이 칼의 나라라면 우리나라는 활의 나라다.

과거 조선시대 장수들도 장검 대신 태도를 찼으며 손에는 활을 들고 다녔다는 기록이 있다.

광화문 광장의 이순신 장군 동상이 고증을 제대로 거치지 않았다는 주장이 나오는 이유다.  

이런 우리의 활을 20년 넘게 제작하고 있는 장인이 충북 청주시에 있다. 상당구 가덕면 상야1길에서 제작소를 운영 중인 김광덕씨(57·사진)가 그 주인공이다.

김씨는 동물의 뿔로 장식한 활 각궁(角弓)을 만들고 있다. 김씨에 따르면 전국에서 각궁을 만드는 사람은 20명이 채 안 된다고 한다.

"한참 풍수지리에 빠져서 돌아다니던 중 경북 예천에 갔는데 한 공방에서 활을 만드는 모습을 봤어요. 그 곳의 권영구 장인에게서 처음 활 만들기를 배웠죠. 그 때가 1996년이었는데 그 이후로 각궁 만들기를 배웠습니다. 세세한 기술은 가르쳐주지 않아서 5년 간 1억원 넘게 돈을 들이면서 기술을 배웠죠."

보통의 경우 어지간히 열정을 갖고 있지 않는 한 중간에 그만뒀겠지만 김씨는 망하더라도 끝까지 가보자는 심정으로 덤벼든 끝에 오늘날에까지 왔다.

활은 길이(2m 기준)에 따라 장궁과 단궁으로 구별하고 재료에 따라선 환목궁과 복합궁으로 나뉜다.
한목궁은 하나의 목편(木片)이나 죽편(竹片)으로 만들어지며 주로 장궁이다. 복합궁은 목편과 죽편, 각편(角片), 건(腱·동물, 특히 소의 힘줄) 등 여러 가지 재료로 만드는데 주로 짧은 단궁(短弓)이다.
전투 기능 상 활은 재질이 부드러운 연궁(軟弓)과 단단한 강궁(剛弓)으로 구분된다. 연궁은 가까운 거리에서 빨리 쏘기 편해 기마 병사가, 강궁은 멀리 쏠 수 있어 보병이 주로 썼다.

우리나라의 활은 복합단궁이며 뿔로 만든 각궁이다. 흑각(黑角)으로 불리는 물소의 뿔로 만들었기 때문에 생긴 이름이다.

조선시대까지 사용되던 활은 전시(戰時)용, 수렵(狩獵)용, 연악(宴樂·궁중 의식이나 잔치 때 연주한 모든 음악)용, 습사(習射·활쏘기 연습)용 등 모두 7종류가 있었다.

현재까지 전해오는 활은 습사와 운동용의 각궁이라고 한다.

그는 우리나라 사람들이 과거보다 체형이 커진 점을 고려해 우리나라 최초로 기존 보다 더 길게 활을 만들어 히트를 쳤다고 한다. 길면서 사용하기 편하고 시위를 당겼다 놓았을 때 반동도 적은 점이 특징이다.

각궁을 만드는 데 드는 공정은 약 170가지이며 재료는 대나무, 아카시아 나무, 소 힘줄, 물소 뿔, 민어 부레 등이 쓰인다. "물소 뿔은 베트남, 미얀마, 태국 등에서 수입하고 소 힘줄은 국내 도축장에서 조달합니다. 예전에는 세관에서 밀수품으로 조사를 받고 벌금도 냈어요. 사실 재료 값이 비싸 타산이 안 맞는데 그래도 긍지 하나로 이 일을 계속 하고 있어요. 제작 과정은 어느 하나 힘들지 않은 게 없지만 그래도 가장 중요한 건 접착입니다. 민어 부레를 물에 담가 염분을 빼고 100도 이하의 저온에서 끓여 풀을 만들어요. 그것도 뿔 접착용, 힘줄 접착용을 따로 만들죠."

김씨는 한 해에 단궁 150여 개를 만드는 와중에 문헌을 토대로 강궁, 동개궁, 대궁, 목궁, 정량궁, 철궁, 목궁, 후궁, 반궁, 연궁, 예궁 등의 활을 복원하기도 했다. 활쏘기는 왕실에서도 궁술로 중시했고 심신을 단련하며 호연지기를 기르기 위해 양반의 자제가 반드시 익혀야 할 무예였다.

김씨 역시 이런 활쏘기를 제대로 알기 위해 자신이 만든 각궁으로 각종 대회에 나가 수상을 했다.

전국체전에 7년 간 충북도 대표로 출전했고 도민체전에는 17번 나갔다. 지난해 제천에서 열린 도민체전에도 청주시 대표로 출전해 종합 준우승을 차지했다.

선수 생활과 더불어 우리 조상의 얼과 슬기가 담긴 전통 무예 궁도를 널리 알리고 올바른 궁도문화 정착을 위해 궁도 모임의 사두(궁사의 우두머리)를 맡기도 했다.

이쯤 되면 명인 칭호를 붙일 만도 한데 그는 그런 것엔 관심이 없다고 했다. 최근에도 시청 문화예술과에서 연락이 왔지만 거절했다고 한다.

그의 제작소에는 활과 더불어 서각 작품도 즐비하다. 자신이 직접 30년째 만들어오고 있단다.

다른 방에는 건반, 드럼, 색소폰, 기타, 대금 등의 악기가 들어차 있다.

"지금 궁도는 7단입니다. 살면서 돈 버는 직업을 60여 개는 가져봤어요. 해보고 싶은 건 다 해보는 중이죠. 그간 어렵고 힘든 일을 많이 해봤기 때문에 즐거운 인생을 찾으려고 4년 전부터 음반을 낼 생각을 했어요."

김씨는 지역의 가수이자 작곡가인 우정덕씨에게서 받은 곡 '들녘의 바람'·'어서오세요' 등 3곡을 묶어 음반으로 내려고 하는 중이다. 활 제작 때문에 거칠고 마디가 굳어 장애인 수준이 된 손가락을 힘겹게 구부려가며 연주도 한다.

"음반은 늦어도 오는 10월이면 나올 예정입니다. 노래방에서 처음 라이브로 노래를 불렀을 때 살면서 힘들었던 느낌이 날아가버리던 순간을 담으려고 해요."

인터뷰를 끝내고 돌아가려는데 김씨가 잠시 기다리라더니 입에 뭔가를 밀어넣었다. 씹어보니 삼이었다.

"심마니 생활도 35년째"라며 웃는 그의 모습에 참 대단한 사람이라는 느낌이 절로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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