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만수의 대하 장편소설 '금강'

제 1부 2장 부어라 마셔라

2009-05-13     한만수

▲ <삽화=류상영>

영동(永同)을 둘러싸고 있는 산들은 높지는 않지만 사철 아름다운 곳이다. 조선후기의 문신 이중환도 택리지 '팔도총론' 충청도 편에서 영동을 산악 지방에 있는 아름다운 지역이라고 다음과 같이 묘사하고 있다.

"영동은 속리산과 덕유산 사이에 있다. 동쪽에는 추풍령이 있는데 덕유산에서 뻗어 나온 맥이 지나가다가 정기를 멈춘 곳이다. 비록 고개라 부르지만 실상은 평지나 다름없다. 그러므로 비록 산이 많다고 하나 심하게 거칠거나 웅장하지 않으며 또 몹시 낮거나 평평하지도 않다. 바위와 봉우리가 윤택하고 맑은 기운을 띠었으며 시내와 산골 물은 맑고 깨끗하여 사랑할 만하며 조잡하거나 놀랄만한 형상도 없다. 땅이 기름진데다 물이 많으므로 물대기가 쉬워 가뭄으로 인한 재해가 적다."

산에는 물이 있고 길이 있는 법이다. 산 속에 있는 영동도 영(永)자를 길 영자로 쓸 만큼 길이 많다. 사방으로 뻗어 있는 길 중에 남쪽으로는 경북 김천 가는 국도가 있다. 영동에서 백리 길인 대전으로 가는 방향인 북쪽으로는 옥천, 옥천과 김천 사이인 동쪽으로는 경북 상주 가는 길이 있다. 그 반대편인 남서쪽은 진안 장수 남원으로 이어지는 길목인 무주 가는 길이 나온다.

영동에서 무주 가는 방향으로 먼 삼십 리 길을 걸어가면 학산면 소재지가 나온다.

첩첩산중(疊疊山中)이라는 말이 있다. 산과 산이 겹쳐 있는 가운데라는 뜻 일 것이다. 첩첩산중에 있는 학산 삼거리에서 남쪽으로는 백화산이 버티고 있다. 동쪽으로는 대왕산이 학산면소재지를 부드러운 곡선을 그리며 내려다보고 있다. 동서쪽에는 옛날에 임금이 나왔다는 임산이 버티고 있다. 임산과 대왕산 사이에 있는 학산천을 다리를 건너 십리 쯤 가다보면 양산이 나온다. 양산에는 금강이 흐르고 있는데 지명을 따서 양산강이라고 부른다.

첩첩산중에 있는 학산은 면소재지이면서도 인근에 있는 무주보다 오일장이 크고, 양산과는 비교를 할 수 없을 정도로 컸다. 학산장이 큰 이유는 삼거리라는 지리적 이점을 껴안고 있기 때문이다.

영동에서 도착한 삼거리는 전라북도 무주, 진안, 장수, 남원 가는 방향과, 충청남도 금산으로 가는 방향으로 갈라진다. 자연스럽게 진안이나 장수 사람들도 무주 보다 장이 큰 학산장을 보러 온다. 이웃 양산이며 금산 사람들도 학산 장으로 몰려들고 있는 상황이라서 학산 장이 커지지 않을 수가 없다.

매월 5자와 10자가 붙은 날은 닷새마다 열리는 학산 장날이다.

장이 열리는 학산 장터를 하늘에서 내려다보면 삼베며 광목, 무명으로 된 크고 작은 차일 들이 천 조각을 다닥다닥 이어붙인 장막을 커다랗게 펼쳐 놓은 것처럼 보인다.

장터에서 차일을 치지 않는 곳은 컴컴한 새벽에 장이 열려서 이슬이 마를 무렵인 열 시쯤이면 파장이 되는 우시장뿐이다. 우시장 입구에는 양철지붕에 송판으로 칸막이를 해 놓은 간이식당 등이 줄지어 서 있다. 식당 앞에는 국밥이며 국수를 삶은 솥을 걸어 놓은 화덕이 늘어서 있다. 그 너머에는 채소전이 형성되어 있다.

계절에 따라서 상치, 시금치 아욱 등 푸성귀부터 복숭아 자두 살구로 시작해서 수박 참외, 사과 배등 과일에 김장철의 배추 무까지 파는 채소전 이다. 채소전 앞에는 어물전이다. 어물전에서는 제삿날 사용하는 마른 가오리며, 북어, 피등어, 홍합에 멸치 오징어에 모내기나 이엉을 엮는 날 등 중요한 날 밥상 가운데를 차지하는 고등어자반, 명태, 꽁치, 갈치 등을 판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