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시대의 화약병기

최무선 이전 시대 발화대 편성·철포 등 사용

2009-05-18     윤용현

고려는 최무선 이전에 화약을 가지고 불꽃놀이도 하였고, 또 무기로도 사용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고려 숙종(1104년)때에 윤관대원수는 여진에 대한 대규모 정벌을 감행하면서 발화대라는 특수부대를 편성 운용하였다. 이후 1135년(인종 13년)에 등장하는 화구나 1274년(충렬왕 1년) 여몽연합군이 일본정벌 시에 사용하였다는 이른바 철포도 화약병기의 일종이다. 또한 1356년(공민왕 5) 9월 고려의 중신들이 서북면방어군을 사열하고, 총통(銃筒)을 발사하니 그 화살이 순천사 남쪽까지 가서 땅에 떨어져 깊이 박혔다는 기록 등이 있다. 고려의 화약병기에 대한 기록은 일본 자료인 소우기(1019년 간행)에도 보이는데, 고려 전함은 돌에 화약을 넣어서 적선을 부순다고 쓰여 있다. 이 입화석척(入火石拓)의 火자가 화약이라면 세계역사를 바꿀 중요한 기록임에 틀림없을 것이다.

이러한 사실들로 볼 때 다소 논란의 여지가 있을 수 있지만 최무선 이전에 이미 화기와 화약이 사용되었을 가능성은 높다고 하겠다. 그러나 화약병기를 사용했다고 하여 그것이 곧 화약과 화약병기의 자체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최무선이 화약의 핵심기술인 염초 제조기술을 습득한 것은 중국인 이원이라는 사람을 통해서이다. 근대 이전의 화약은 유황, 염초, 숯가루를 섞어 만들었는데, 화약 제조를 위한 공정 중에서도 가장 까다로운 것이 염초 제조 공정이다.

최무선이 화약을 본격적으로 제조한 시기는 1377년(우왕 3)으로 '화통도감'을 설치하여 화약병기의 제조 업무를 주관하였다. 화통도감의 설치는 고려가 화약과 화약병기의 자체 생산, 대량 생산체제를 갖추었음을 의미하는 것으로써, 고려는 동양권에서 중국에 이어 두 번째의 화기 보유국으로 등장한 것이다.

화통도감에서는 화약과 함께 대장군·이장군·삼장군·육화석포·화포·화통·화전·철령전·피령전·철탄자·오룡전·주화 등 18종에 달하는 화약병기를 제작하였다.

고려는 최무선이 개발한 화기들을 군사적으로 널리 활용하기 위해 화기 운용부대인 화통방사군도 설치하였다. 나아가 해전에서의 화포 활용을 위해 누선(樓船)이라는 하는 새로운 전함도 건조하였다.

이러한 군사적 화기 운용의 성과는 바로 나타났는데, 화기로 무장된 고려의 전함은 왜구전에서 그 위력을 발휘하였다. 1380년 진포해전과 1383년 관음포해전이 그것이다.

특히 진포해전은 우리나라의 해전사에 있어서 역사적 의미를 크다. 먼저 자체 생산한 화약과 화포로 장비한 수군이 치른 최초의 해전이었다는 점이 하나이고, 또 하나는 세계 해전술상에 있어서 화포가 장비된 전함이 투입되어 함포 공격을 감행한 최초의 전투라는 점이다. 즉, 기존의 해전에 있어서의 기본 전술이라 할 수 있는 당파전술(撞破戰術)에 보다 한 차원 높은 함포전술이 가미되어 새로운 변화를 이룩했다는 점이다.

▲ 윤용현 국립중앙과학관 학예연구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