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만수의 대하 장편소설 '금강'
제 1부 2장 부어라 마셔라
| ▲ <삽화=류상영> |
"교장 선생님의 말씀이 틀린 말씀은 아뉴. 하지만 시대가 시대 인 만큼 감나무 밑에서 감 떨어지기만 지달리다가는 큰일 나유. 선것날 군청 호의실에서 이승만 대통령 각하 표 셀 날만 지달리고 있을 때는 지나갔다 이거유."
이동하는 말을 끝내고 나서 가볍게 헛기침을 했다. 천천히 맥주잔을 들고 건교자상 양쪽에는 앉아 있는 사람들의 표정을 쓰윽 살핀다. 김치수는 수염이 없는 턱을 문지르며 괜히 천장을 쳐다본다. 그 옆에는 모서댁이 무릎을 세우고 두 손을 깍지 낀 자세로 앉아서 다소곳이 눈썹을 내려 깔고 있다. 모서댁 옆에 앉아 있는 농협조합장 오병록은 붉으스름하게 취기가 돈 얼굴로 건너편에 앉아 있는 손문규만 응시하고 있다. 정작 당사자인 손문규는 옆에 앉아서 부지런히 안주를 집어 먹고 있는 명월이를 만지작거리는데 정신이 팔려있다. 명월이 오른쪽에 앉아 있는 최천득은 북어포를 잘근잘끈 씹으며 맥주병을 멀거니 바라보고 있다.
오병록 옆에 앉은 우체국장 김명식은 옆에 앉아 있는 기생 경화의 허벅지를 만지고 있고, 경화 왼쪽에 앉은 수리조합장 허명구는 경화의 등을 쓰다듬고 있다.
허, 선거가 열흘 밖에 안남았는디도 죄다 맘은 콩밭에 가 있구먼.
이동하는 한심하다는 표정으로 바라보던 시선을 슬그머니 거두웠다. 잔을 비우고 나서 빈잔을 들고 옆자리에 앉아 있는 손문규를 바라보았다. 명월이와 손장난을 하느라 정신이 없는 손문규를 바라보던 시선을 지서주임인 김치수에게 돌렸다. 김치수의 잔이 비어있는 것을 알고 잔을 권했다.
"오늘 오전에 신익희가 죽었담서. 그람 대통령 자리는 따 논거나 마찬가지 아닌가?"
김명식이 싱겁다는 얼굴로 반문한다.
"신익희가 살았을 때는 살아서 문제였지만, 죽었응께 죽어서 문젠규. 그저께 신익희가 한강 갱변에서 연설회를 열었잖유. 그 때 간첩같은 놈 들이 및 명이나 모였나 하믄……"
"엄청났다는구먼."
김치수가 이동하에게 두 손으로 술잔을 받으면서 모두가 들으라는 목소리로 말했다.
"내가 알라고 해서 일부러 안 건 아니고, 서울 중앙우체국에 있는 친구 놈하고 통화를 하다 알게 되었는데 삼십만 명이 모였다느만유."
우체국장 김명식이 땅콩 껍질을 손가락으로 비벼 까면서 아는 척 했다.
"우체국장이시니께 그 비싼 시외전화를 맘대로 하능개비구먼. 정확히 알고 있구먼유. 치안본부에서 추정한 숫자가 삼십만 이라고 했응께 그 보다 많으믄 많았지 짝지는 않을끼구먼."
"매향이는 목깡하러 간 지가 언진데 와 안직도 안 오는기가?"
모서댁이 북어포를 고추장에 찍어서 김치수의 입에 넣어주며 혼잣말로 중얼거린다.
"쫌만 지달리믄 올뀨."
손문규가 등을 쓰다듬으면 쓰다듬는대로, 허벅지를 주물럭거리면 주물럭거리는 대로 몸을 내 맡기고 있던 경화가 방문을 바라보며 말했다.
"제우, 삼십만 갖고 머가 문제랴? 너구나 신익희는 죽어 읎어졌는데……"
손문규가 경화의 손을 콱콱 쥐었다 놓기를 반복하다 말고 도저히 이해를 할 수 없다는 얼굴로 김치수에게 시선을 돌렸다.
"교장선생님은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느만유. 서울시 인구가 못 돼도 백오십 만명은 될 거 아뉴. 백오십 만 명 중에 삼십만 명이 한강 갱변으로 모였다믄. 그 머여. 삼오는 십옹께께, 다섯 명 중에 한 명은 먹고사는 일을 때려치우고 한강 갱변으로 모였다는 야기 아뉴?"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