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만수의 대하 장편소설 '금강'

제 1부 3장 초승달 아래서

2009-06-04     한만수

▲ <삽화=류상영>

범골은 왜정 때만 해도 범이 나올 정도로 숲이 울창한 곳이다. 그곳은 동네 근처와 다르게 숲이 울창한 만큼 나무가 많다. 산 소유도 군유림이어서 산감의 감시도 느슨하다. 하지만 나무를 해오기에는 거리가 멀다. 평지 시오리 길도 아니고 비봉산을 넘은 다음에 다시 고개 높이만 해도 근 오리가 되는 큰재를 넘어서 범골까지 가기란 그냥 걸어가기도 힘든 거리다. 그래서 그곳까지 나무를 하러 가는 사람은 모산에서 몇 되지 않는다. 그나마 장작으로 내다 팔 나무를 하러가는 사람은 젊은 층에 속하는 박태수와 김춘섭뿐이다.

골목에서 개짓는 소리가 들리는가 했더니 김춘섭 집에서 두런두런 거리는 소리가 들려온다. 김춘섭이 일어나서 아내 철용네와 함께 지게에 장작을 얹고 있는 것 같았다.

서른 너이에다, 서른여덟이니, 마흔이요. 마흔 두 개에다 마흔 너이니 마흔 여섯이고, 마흔 여덟이니 쉬인이요…….

박태수는 귀는 김춘섭의 집 헛간에 가 있지만 마음속으로는 계속 숫자를 셌다. 장작을 산 사람들 중에서 어떤 이들은 장작을 일일이 세어보는 사람도 있다. 그런 경우를 대비해서 한 짐을 한 강다리로 정해놓고 숫자를 세는 것이다. 한 강다리인 백 개에서 한 두 개가 많은 경우는 말이 없지만 부족한 경우는 꼭 말을 한다. 그런 경우는 난감하다. 다음날 부족분 한두 개를 들고 그 집을 찾아가기도 민망하려니와, 일부러 한두 개씩 부족하게 지고 왔을 거라고 생각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장작의 크기는 나무를 자를 때 톱자루로 크기를 재가며 했기 때문에 크기는 모두 똑같다. 장작 한 개의 무게도 저울로 달아 보지는 않았지만 오랜 경험 탓으로 모두 비슷했다. 허리를 굽혀가며 바쁘게 지게에 장작을 얹었더니 두껍게 입은 옷 안이 더웠다. 하지만 지퍼를 열면 감기 걸릴 확률이 높다.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오르는 것을 느끼며 지게꼬리로 장작을 단단히 묶었다.

박태수는 한쪽 무릎은 땅에 대고 한쪽 무릎은 세운 자세에서 지게멜빵을 어께에 꼈다. 지게작대기를 창처럼 양손으로 잡아서 땅을 짚고 끄응하며 불끈 힘을 쓴다. 지게멜빵이 어깨를 무겁게 파고드는 느낌 속에 지게목발이 공중으로 가뿐히 치솟는 느낌이 든다.

뒤안을 나와서 둥구나무 밑으로 걸어가며 김춘섭의 집을 바라본다. 김춘섭이 지게 앞에서 지게꼬리를 지게 새장에 잡아매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철용네가 팔짱을 끼고 김춘섭을 바라보고 있는 모습이 방안에서 빠져나오는 희미한 호롱불빛에 어스름하게 보인다.

모산서 학산까지는 넉넉한 십리 길이다. 어른이 쉬지 않고 걸어가면 한 시간이 걸리는 거리이기도 하다. 하지만 장작을 지고 가면 빨라야 한 시간 반은 걸린다. 그 때쯤이면 새벽이 밝아 올 것이다. 시간은 확인해 보지 않았지만 담배 한 대를 피우고 출발해도 늦지는 않을 것 같았다.

박태수는 둥구나무 밑에서 걸음을 멈춘다. 지게를 벗어서 지게작대기로 받쳐 놓은 다음에 너럭바위에 걸터앉는다. 바람 한줄기가 보리밭에서 달려와 둥구나무 가지를 흔든다. 빠르게 장작을 지게에 얹느라 몸이 더워져 있어서 바람이 시원했다. 김춘섭이 지게 앞에 무릎을 꿇고 앉는 모습이 보인다. 철용네가 지게 뒤로 가서 장작 짐을 받쳐주는 모습이 정겨워 보였다.

김춘섭은 아내의 배웅을 받으며 둥구나무 그늘 밑으로 들어갔다. 박태수 옆에 지게를 받쳐 놓고 너럭바위에 앉았다. 집에서는 쌈지담배를 피우고 학산에 갈 때는 파랑새를 피우는 박태수가 야전잠바 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낸다. 혼자 피우려다 김춘섭과 시선이 마주치자 한 개비를 내밀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