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과 지방, 지방의 문제점
문화와 돈의 관계
문화는 언제든지 경제와 함께 자라나는 생명체와도 같다. 솔직히, 경제가 어려우면 문화에 신경 쓸 여력이 생기지 않는다. 막말로 '먹고 살기도 힘든데 무슨…'이라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물론 어려운 생활 속에서 문화는 싹트고 또 이어진다. 하지만 그것은 궁핍의 문화사이지, 찬란한 문화를 싹틔우기는 어렵다.
음악, 미술, 문학을 비롯한 모든 예술과 건축 등의 문화는 경제와 밀접한 관련을 맺는다. 국가의 경제가 어려워지면 문화 쪽의 지원이나 운영이 제일 먼저 긴축된다. 당장에 먹고 사는 문제와 직결되지 않기 때문이다.하지만 사람이 빵으로만 살 수 없듯, 어느 정도 배가 불러오면 이번에는 문화를 찾게 되고, 문화를 향유하고자 하는 것이 인간의 자연스러운 욕망이자, 인간 사회의 욕망 이동단계이다.
그러나 문화는 갑자기 돈이 많아졌다고 해서 단순간에 획득되거나 가꾸어지지 않는다. 오랜 시간과 열정과 문화 마인드가 형성되지 않고는 문화예술은 싹트지 않는다. 마음 가는 곳에 돈가듯 그 다음이 경제이다.
시골에서 무슨 재주로 미술관이나 박물관을 유지할 수 있겠는가. 누군가는 돌봐줘야만 한다. 한국의 기현상 가운데 모든 것이 너무도 불균형적으로 중앙집중적이라는 점에 대해서는 두말 할 필요가 없다. 국제화 시대의 도시경쟁력을 갖추기 위해서는 거대도시도 있어야 한다. 하지만 그보다는 특성화된 지역도시, 강하고 알찬 소도시들도 함께 더 많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지방은 언제까지나 서울의 식민지가 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지방도 언제까지 중앙에만 의존할 것이 아니라 자립성을 갖춰야 하고, 그것이 가능한 중장기적 전략을 모색해야만 한다. 그 가운데 하나, 내가 주장하고 싶은 것은 문화와 예술의 도시로 가꾸자는 것이다. 사람 사는 냄새가 나고, 우리 고장의 특색인 전통과 문화의 그윽한 향취가 구석구석에 배어 있는 도시, 고장 말이다.
그래야 사람들이 늘어나고 귀향하는 사람도 많아질 수 있다. 사람들을 위하여 휴게실, 공원, 도서관, 미술관을 설립하면 자동으로 병원, 학교 등 복지시설도 들어서게 되어 있다. 경제란 어느 지점에서 동력이 걸리면 자동순환에 의해 연쇄적으로 돌아가게 돼 있는 시스템인 것이다.
정부에서는 일방적인 도시인구 억제정책을 세우고 통제하고 있는데 이는 구태의연한 발상이다. 사람으로 하여금 서울에 살지 않을 수 없도록 풍토나 구조가 형성돼 있는데, 억제책이 먹힐 리도 없고 그것은 바람직한 정책도 아니다.
그러다 보니 행정구역상으로는 서울이 아니지만 사실상의 서울이 된다. 이른바 그런 현상의 이름이 수도권이다. 지방에서 느끼기에 수도권도 서울이나 마찬가지다. 출퇴근 시간의 교통지옥은 서울 시내 뿐 아니라 수도권과 서울 사이에서도 벌어진다.
나는 박물관을 10여년 가량 운영해 오면서 충남북지역의 언론의 취재나 관심을 받아본 일이 거의 없다. 보도자료나 취재원을 제공해도 귀찮아서인지 이를 소화해 내는 일을 보지 못했다. 지역에 있는 문화시설에 시선을 주는 일은 지방언론의 몫이고 사명이다. 그런데도 이를 무시하는 관행이 문화예술경영자를 슬프게 만든다.
우리가 관심을 못 받아서가 아니라 지방신문이 지방의 문화기관을 홀대하는 이런 관행과 인식이 씁쓸한 것이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중앙언론매체에 취재원이나 보도자료를 넘기는 경우 그들은 불원천리 찾아와 격려와 문제점을 지적해 언론으로서의 사명을 다하고자 하는 태도를 보여준다.
우리 사회가 발전하고 문화예술이 창달될 수 있기 위해서는 우리 모두가 관심과 사랑을 가지고 격려하고 돌보아야 한다. 특히 시골에서 고독과 좌절 속에 있는 문화예술 경영자들에게는 더욱 관심과 격려가 필요하다.
| ▲ 이재인 한국인장박물관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