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만수의 대하 장편소설 '금강'

제 2부 1장 한 밤의 밀회

2009-10-08     한만수

▲ <삽화=류상영>

이병호는 청주 천천히 한 모금을 입 안에 넣고 맛을 음미하다가 꿀꺽 삼켰다. 순간 울대가 빠르게 위 아래로 움직이는 것을 느꼈다.

"그라고 봉께 남조합장 본지도 달포가 지난 거 같구먼. 그 사람은 젊은 사람이 을매나 예의가 밝은지 몰라, 우리도 워딜 가믄 예의 바르다는 말은 영 안 듣는 것은 아닌데도 내가 놀랠 정도래니까. 허긴, 그릏게 처세를 잘 하니께 그 나이에 농협조합장이 됐겄지. 남 조합장 나이가 올게 및 살이더라?"

이병호는 최서기의 얼굴을 바라보지 않고 마당으로 나 있는 미닫이문을 바라보며 건성으로 물었다.

"예……저……"

최서기는 이병호의 갑작스러운 질문에 농협조합장 남병도의 나이가 생각나지 않는다. 마흔 니 살인가? 아니믄 다섯 살인가? 대출 이자를 묻는 것도 아니고 저금 금리를 묻는 것도 아니고 해필이믄 조합장 나이를 묻는댜, 사람 환장하겄구먼. 남병도의 나이가 얼른 생각이 나지 않으니까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만약 나이를 모른다면 모시고 있는 조합장 나이도 모르냐고 호통을 칠 것이 분명했다.

"지가 알고 있기루는 올게 마흔다섯 살, 임자년 쥐띠로 알고 있구만유."

최서기의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오르고 있는 것을 본 강서기가 자신 있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조합장 나이를 워째 면서기가 먼저 알고 있능겨? 자네하고 동갑인가?"

"아……아녀유. 전 인제 제우 서른시살 갑자년 쥐띠유. 조합장님 나이를 알게 된 것은 술자리에서 우연히 서로가 띠 동갑이라는 걸 알게 돼서……"

"허허! 그라고 봉께 우리집에도 띠 동갑이 있구먼."

이병호는 지난 6월에 태어난 승우가 쥐띠라는 것이 생각나서 자신도 모르게 큰 소리로 웃었다.

이병호의 말을 얼른 받아들이지 못한 강서기는 말똥말똥한 얼굴로 최서기를 바라본다.

"맞아유. 올개가 쥐띠니께 올게 태어나신 부면장님의 아드님도 쥐띠구만유."

남병도의 나이 때문에 고전을 면지 못하던 최서기가 손뼉이라도 칠 것 같은 얼굴로 맞장구쳤다.

"이름을 승우라고 지셨다믄유?"

"그려, 일부러 대전 까지 가서 유명한 작명가한티 이름을 받았지. 오를 승(昇)자에 집우(宇)자여. 그 선상이 하는 말이 승우라는 이름은 하늘로부터 복을 받는 이름이라고 하드만. 재복과 명성이 따라서 문무를 겸비한 관운에 서광이 있다는 거여. 그 머여, 현모양처를 만나서 만복대길 할 이름이라고 하드만. 그래서 쌀 두가마니 값을 아깝다 생각 안하고 주고 왔구먼. 우리 장……아니, 손자가 앞으로 유명하게 성공한다는데 그깐 쌀 두가마니가 아까울까."

이병호는 신이 난 얼굴로 자랑을 하다가 무심결에 장손자라는 말을 하려다 얼버무리며 말을 끝냈다. 아직은 승우가 장차 장손자가 될 것이라는 걸 소문낼 시기가 아니라는 생각이 불쑥 들었기 때문이었다.

"다시 한 번 축하드려유, 진작에 찾아뵙고 인사를 드려야 하는데 워낙 바쁘다 봉께……"

"부면장님도 굉장히 좋아하시는 거 가튜. 요새는 맨날 싱글벙글 하시는 모습을 보믄 지 기분도 덩달아 좋아지는 거 같드라니께유."

"그려, 그른 걸 보믄 사람이 돈만 많다고 최고가 되는 거시 아닌 거 가텨. 이른 말을 하믄 읎는 사람들이 머라고 하겄지만 말여, 사람이 돈이 읎어도 못살지만 우신 가정이 편안해야 하능겨. 이븐에 내가 그걸 뼈저리게 느꼈다니께. 이런! 내가 젊은 사람들 앞히서 못 하는 말이 읎구먼. 자, 식기 전에 어서들 한 잔씩 햐. 그라고 바쁜 기 읎으믄 우리집에서 즈녁도 먹고 가. 겅거니야 변변치 않지만 사람 먹고 사는 거시 다 마찬가지지 머."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