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만수의 대하 장편소설 '금강'

제 2부 1장 한 밤의 밀회

2009-10-13     한만수

▲ <삽화=류상영>

"근대유?"

모리댁은 남편을 동네 개 이름 부르듯이 부르는 황인술의 말에 우뚝 멈췄다. 목에 걸고 있던 삼배 수건을 펴서 머리에 휘어 감으며 가당치도 않다는 표정으로 반문했다.

"밭에 있으믄 오는 질에 태수 좀 소리해서 우리 집으로 오라고 햐. 이 분들하고 술 한 잔 함서 상의할 거시 있응께."

"향숙이 아부지는 지가 밭에 가서 보내면 되지만 상규 아부지는 집에 있는가 모르겄네."

모리댁은 면서기와 농협서기가 술을 마시는 자리에 남편을 부른다는 말에 금방 얼굴이 펴졌다. 멀뚱한 표정으로 서 있는 강서기와 뒷걸음치면서 인사를 했다.

황인술의 아내 광일네는 닭을 두 마리나 잡아서 백숙을 준비해 놓았다.

술도 막걸리가 아니다. 해룡네에게 부탁을 해서 술도가에서 소주를 두 되나 준비를 했다. 반찬도 성의를 다했다. 더덕은 고추장을 발라서 석쇠에 굽고 깨소금을 뿌렸다. 쪽파는 뜨거운 물에 데쳐서 한입에 먹기 좋도록 똘똘 말고 초고추장을 만들었다. 아직 김장하기는 이르지만 새로 담그고 여름에 소금물에 담가 놓았던 노각오이는 간장과 참기름에 무쳐서 내놓았다.

"차린 것도 읎이……"

광일네는 오늘 강서기와 최서기가 출장이 온다는 말을 듣고 오전에 일을 하지 않았다. 물을 끓여서 닭을 잡으랴, 이집 저집 다니면서 여름에 캐다 놓은 더덕을 얻어온다. 밭에 가서 쪽파를 캐오랴, 김치를 담그고 소주를 받아오느라 이리 뛰고 저리 뛰느라 점심도 제대로 못 먹었다. 그런데도 황송하다는 얼굴로 말꼬리를 흐리며 방으로 안내했다.

"이거 올 때 마다 번번이 대접을 받아서 워칙한댜."

강서기는 이 집구석은 백번 오믄 백번 다 백숙이구먼, 이라는 말을 감추고 어설프게 웃어 보였다.

"워칙하기 워칙햐, 후년에 영농자금 배정할 때 모산은 쥐꼬리만큼만 신경을 더 써 주믄 되는 거지."

최서기는 강서기와 다르게 닭 백숙을 좋아하는 편이다. 술상을 보는 순간 이병호한테 받은 모욕감이 사라지고 군침이 도는 것을 느끼며 아랫목에 덜썩 주저앉았다.

"쪼끔 있다 박태수하고 윤길동이 오기로 했쥬?"

강서기가 술 상 앞에서 검은색 서류가방을 열면서 황인술에게 물었다.

"이 동리서 그 동생들이 지가 하는 일을 젤로 많이 도와주고 있는 편유. 왜? 그 동상들이 오믄 자리가 불편할 거 가텨유? 그람 시방이라도 예핀네를 시켜서 오지 말라고 시킬까?"

황인술이 강서기 옆에 바짝 붙어 앉아서 은근한 비밀이야기를 하는 표정으로 물었다.

"그기 아니고, 오늘 출장 나온 거 땜시 그라는데유."

"오늘 출장 온 목적이 내년도 보리 증식 현황을 조사라는 거라고 안 그랬남?"

"맞아유. 그걸 빨리 군청으로 보고를 해야 하기 때문에 읎는 시간을 쪼개서 나왔슈. 원측은 내가 가가호호를 방문해서 조사를 해야겄지만 솔직히 요새 엄청 바빠서유……"

강서기는 서류가방 안에서 모산 보리농가 명단이 적힌 서류를 꺼냈다. 황인술에게 봄바람이 살랑거리는 목소리로 말하며 서류를 슬그머니 앞으로 밀어낸다.

"난 또 머라고, 그른 문제라믄 걱정할 필요 읎슈. 내가 이삼 일 안에 집집마다 방문해서 후년에 보리를 을매나 심을 건지 정확하게 조사를 할 모양잉께."

강서기가 내민 서류를 끌어당긴 황인술이 건성으로 서류를 흝어 보며 말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