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만수의 대하 장편소설 '금강'
제 2부 3장 서울 하늘 아래서
| ▲ <삽화=류상영> |
"긴 말 안겄어. 왜 우리 형이여. 왜 우리 형을 강도로 몰았냔 말여."
"시훈에 잘못했네. 내……내가 무조건 잘못했으니 제발 목숨만 살려 주게 응?"
"내 동상이 하는 말을 똑바로 못 들었능개비구먼. 왜 나를 강도로 지목항겨? 난 그날 즈녁 오 사장네 집 근처도 안 갔단 말여. 그걸 니 놈이 젤 잘 알고 있었잖여. 근데 왜 내가 오사장을 찌르고 돈을 훔쳐간 거 같다고 그짓말을 했는지 똑바로 말을 하란 말여. 만약 한가지라도 그짓말을 하믄 내 동상이 가만히 있지 않을겨. 내 동상은 승질이 너무 급해서, 한븐 승질이 났다 하믄 나도 못말린단말여. 그 쯤만 알고 어여 대답해 봐!"
"자……자네가 시골서 올라 왔잖아. 서울에 알고 있는 사람이 한 명도 없고. 지……집안 사는 형편도 가난한 거 같고 해서 자네를 찍었네. 하지만 자네가 교도소에 들어 간 후에 얼마나 후회를 했는지 모르네. 자네가 나오면 내가 충분히 보상을 해 줄라고 했어. 진실이네. 그러니 제 발 자네 동생 좀 말려 주게. 응?"
"개새끼! 우리가 시골에서 왔다가 만만하게 봤다 이 말이여?"
경훈은 서상철의 뻔뻔스러운 말에 가슴 속에서 짓누르고 있던 분노가 울컥 치솟아 올랐다. 있는 힘을 다하여 군화를 신은 발로 서상철의 옆구리를 퍽 차 버렸다. 억! 하는 짧은 비명과 함께 서상철이 옆으로 나동그라졌다. 가까이 다가가서 옆구리며 배든 발길이 닿는 데로 차고 짓밟아 버렸다.
"개새끼 소리만 질러 봐. 칼로 콱 찔러 버릴팅께."
"아이고, 제발 살려주세요. 달라는 데로 뭐든 드릴테니까 제발 살려 주세요. 제발……"
서상철은 살의에 번뜩이는 경훈의 눈빛에서 죽음을 느꼈다. 경훈의 발길질을 그대로 껴안으며 새우처럼 등을 구부린 자세로 두 손을 싹싹 빌었다.
"그람, 어뜬 놈이 그 날 강도질을 한겨. 네 놈이지?"
경훈의 발길질을 구경만 하고 있던 시훈이 뒤늦게 서상철의 뺨을 보기 좋게 후려갈기며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모……모르겠습니다."
"니 놈이 오늘 기어이 제삿날이 되고 싶은개비구먼?"
경훈이 서상철의 목에 칼을 갖다 대고 날카롭게 물었다.
"제……제가 그랬습니다. 제가 하늘 무서운 줄 모르고 복면을 쓰고 들어가서 오 사장 허벅지를 찔러서 기절 시켰습니다."
"형사 놈들도 나한티 허벅지를 찔렀다고 고백을 하라고 하드만. 이놈이 틀림 읎구먼. 그람 돈도 니 놈이 훔쳐강겨?"
시훈이 서상철의 멱살을 단단하게 움켜잡고 분노를 짓누르느라 이가 갈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아이쿠! 예, 제가……제가 눈이 어두워서 그랬습니다. 저……저기 돈궤에 돈이 있으니까 마음대로 가지고 가시고 제발 목숨만 살려 주십쇼."
서상철은 파랗게 질린 얼굴로 시훈이 묻는 말에 대답을 하며 손가락으로 가겟방을 가리켰다.
"너 같은 놈은 죽어야 혀."
12시 통행금지를 알리는 예비 사이렌이 울렸다. 통행금지가 삼십 분 남았다는 신호다. 밤공기를 찢어 버릴 것처럼 높고 길게 울리는 예비 사이렌 소리에 경훈은 정신이 번뜩 들었다.
<계속>